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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08. 2023

주말 동물원 나들이

모처럼 축제도, 연휴도 많은 시절이다. 한쪽에서는 불꽃이 터지고, 단풍이 물들고, 아시안 게임이 치러졌다. 또 연휴에 모처럼 좋은 날씨가 이어져 아마도 집에 머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다들 거리로, 도로로 쏟아져 나와 있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낄 법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싶다.

인생의 축제라는 것도 그렇게 계절처럼 짧다. 오늘은 아내가 몸이 안좋다고 하여, 아이랑 둘이서 가을맞이 동물원 나들이를 다녀왔다. 둘이서 동물원을 간 건 처음이었다. 굳이 동물원을 간 것은, 김풍 작가가 한 번 같이 가자고 권했고, 그래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동물원에 다른 가족이랑 간 것도 처음이었는데,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사실, 이쪽 아이는 이쪽 아이대로, 저쪽 아이는 저쪽 아이대로의 리듬과 욕망이 있다보니, 그것을 맞추고 쫓느라 약간 정신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동물원에 같이 가고, 같이 김밥을 나눠 먹고, 같이 한동안 걷고 했던 게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사는 인생, 동물원을 찾는 아이의 시절이라는 것도 계절처럼 짧고, 또 그런 시절 다른 가족과 동물원 나들이를 한 번 함께해본다는 것, 그런 것들이 그저 다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몇 번 없을 기억 하나가 생긴 셈이다.


동네에 돌아와, 다같이 고기를 구워먹고, 공원을 거닐고, 셋이서 축구도 봤다. 점점 아이랑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고, 또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대로 큰 탈 없이, 그저 10년, 20년이 흘러갔으면 한다. 그러고 나면, 인생의 값진 시절을 살아내고 또 다른 단계로 접어들어가 있을 것이다.


인생이 당장 급하게 엄청난 걸 쫓기 보다는, 그저 한 해 한 해 온당히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의 삶이란, 대개 당장 무언가 급박하게 쫓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조급함과 초조함이 디폴트인 것 같은 인생이지만, 너무 그렇게 사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건 그저 10년쯤 삶을 잘 지켜내어 여전히 맛있는 걸 먹으며 건강한 신체로 거닐 수 있는 일이고, 또 그로부터 10년쯤 지나도 변해버린 가운데 소중한 것을 지켜내며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일이고, 또 다시 10년쯤 지나도 그저 사랑하며 또 온당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은 엄청난 곳에 도달해가는 일이라기 보다는, 하루하루 조금은 더 온당해지는 쪽으로 아주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가며 소중한 마음들을 지켜내는 일이 아닌가 한다. 가을이 오면 단풍을 보러 떠나고, 스포츠 경기가 있는 때면 맥주 마시며 즐길 줄도 알고, 걷기 좋은 날에는 부지런히 산책을 하며, 여전히 좋아하는 책들을 쌓아놓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고기를 구워 먹고 커피를 마시는 여유 정도를 삶 속에 누릴 수 있는, 그런 날들을 이어갈 정도의 힘, 그 '유지'와 '수호'의 힘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어딘가로 떠나지 못해 안달인 것이 아니라, 그저 이대로 이어가는 일의 어려움과 위대함을 이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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