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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Oct 06. 2023

인생은 나약한 인간들이 서로 잠시 기대는 것

얼마 전, 휴대폰의 잠금화면을 웃으며 해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사진으로 바꾸었다. 휴대폰을 열어 아이의 미소를 볼 때면, 갑자기 아이를 보고 싶어 달려가고 싶을 때가 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다들 프사니 바탕화면이니 하는 걸, 아이로 바꾼다는데,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를 프로필 사진이니 바탕화면이니 하는 것에 걸어두는 게 부모들이 하는 다소 요사스러운 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그런 걸 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해봐야, 100세 시대에 몇 년 남짓이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더 보고 싶어서 사진을 걸어두고, 그 아이의 미소를 보며 힘을 내는, 다소 젊은 부모로 사는 날이라는 것은, 잠깐 해보고 떠나보내는 시절의 일이다. 모르면 몰라도, 지나고 나면,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갔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장송의 프리렌>이라는 만화가 나왔다. 이 만화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어서,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걸 보고 심장이 철렁할 정도로 반가웠다. 그리고 두 편을 보면서 눈물을 반쯤 쏟았다. 이야기는, 아주 긴 세월을 살아가는 엘프가 인간 친구들을 모두 떠나 보낸 뒤의 시간을 살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엘프에게 인간의 평생이란 찰나와 같은 시간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간의 삶이라는 건 무한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미 그 짧은 생을 살고 죽었다.


인간은 다들 나약하고, 인생은 잠시 그 나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기대어 함께하는 일 같다. 어린 아이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두 남여가 지지고 볶듯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이 나날들이 얼마나 잠시 주어진 일인지를 생각한다. 마치 어린 시절 병아리를 키우던 시간처럼, 잠시 살다 떠난 나의 옛 강아지의 삶처럼, 레고를 좋아하거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시절처럼, 우리의 인생도 금세 지나간다.


아내와 나는 종종 우리가 '삼위일체'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한다. 아이 맡기고 어디 둘이서 가서 속 시원하게 놀 수 있는 시간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딜 가나 셋이 함께이고, 그야말로 삼위일체처럼 전국을 굴러다니고, 매 저녁, 매 주말을 함께한다. 우리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은 나의 입장이랄 걸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혹은 불행할 거라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니, 나는 이게 소중하다. 왜냐하면, 셋이 꼭 붙어 자고, 같이 밥 먹고, 함께 아침에 일어나고, 주말이면 어디든 같이 떠나는 이런 날도, 100년을 사는 인생에 10년이나 주어질까 말까 할 정도로 찰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 때문에 많은 기억들을 잃고, 벌써 이렇게 늙어버렸나, 잠깐 산 것 같은데,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우리는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가엾게 죽어가는 존재들이고, 살아있는 동안 잠시 사랑하는 것 뿐이다. 미워하거나 저주하고 불행을 양식 삼아 하루하루를 살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우리의 시절은 더욱 짧다. 그러니 불행하다면, 행복할 체력을 기르고 더욱 서로에게 기대고 저주를 이겨낼 힘을 내야만 한다. 저기, 이제 지구를 멸망시킬 운석이 떨어질 날이 겨우 이틀 남짓 남았다. 그러면, 우리는 공포에 떨기 보다 이 밤을 최고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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