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Oct 05. 2023

나는 우리가 잘 살 거라고 믿는다

합리적인 생각이라 볼 수는 없지만, 나는 아내와 내가 잘 살아갈 것이라 믿고 있다. 믿음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는 나만의 이유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결혼 초기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많이 고생했고, 깊이 마음 아픈 시절을 보냈다는 점이다. 그 어려운 시절을 함께 어떻게든 서로를 붙잡고 이겨냈기에, 우리 사이에는 단단한 무언가 만들어졌을 거라 막연히 믿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고생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의 고생 앞에서 우리의 고생은 별반 대단한 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수험생활과 시작되었던 신혼과 육아의 시절, 아이를 씻기면서도 이어폰을 들으며 공부를 하고, 이유식이 끓는 시간 동안 칼럼을 써서 학비를 벌고, 한 해는 서로 타지에서 떨어져 지내며 각자 반 년씩 아이를 돌보며, 온갖 집안 문제까지 쓰나미처럼 왔던 그 시절은, 아마 다시 살라고 하면 살아낼 자신이 없을 만큼 절실히 견뎌낸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비오는 소리 가득하던 밤이다. 아내는 주말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이를 보러 왔다. 나는 차를 몰고 아내를 공항에 태워주고, 차 뒷좌석에서 잠든 아이를 싣고 돌아오며, 내가 녹음한 암기 노트를 듣곤 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깨지 않도록 늘 비오는 소리를 틀어두고 새벽까지 남은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다 아이가 깨면 먹이고, 재우고, 다시 공부하고, 그런 밤들이 몇 년인가 이어졌었다.


그래도 우리는 잘 사랑했다. 당연히 우울이나 힘겨움을 호소하기도 하고, 심하게 싸울 때도 있었다. 그래도 또 같이 산책하며 웃고, 깨알같은 시간을 쪼개어 나들이를 떠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양 굴었다. 사실, 그 시절은 인생에서 시간이 가장 잘게 쪼개어져 있던 시절이었다. 한 시간 단위가 아니라, 거의 10분 단위로 쪼개어져 있었다. 그만큼 10분, 10분이 소중했다. 같이 침대에서 뒹구는 10분, 같이 씻는 10분, 같이 먹는 10분, 같이 산책가는 10분. 내 인생에서 10분이 그때보다 소중한 때는 없었다. 종일 공부를 마치고 저녁에 멀리서 아내가 보일 때면, 유모차를 끌며 다가오는 그 실루엣보다 반가운 걸 세상에서 경험한 적이 없다.


그렇게 절실한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잘 살거라고 믿는다. 믿음이야 원래 이성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고, 그런 믿음이 그다지 합리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서로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육아는 커녕 결혼도 하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한없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만나, 한없이 불완전한 시절을, 그래도 사랑과 믿음으로 건너온 역사가 있다. 우리가 그 역사를 쉽게 저버릴 것 같진 않다. 또 그와 같은 시절이 와도, 어쩐지 우리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럴지는 모르지만, 한편, 그랬으면 바란다. 원래 믿음과 희망이라는 것은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므로, 내가 확고한 사실처럼 믿고 싶어하는 마음과 별똥별에 비는 꿈이 같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우리가 잘 살거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괜찮은 삶을 건너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될 거라고 꿈을 꾼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을 보내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