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견딜 수 없을 때면, 나는 늘 글을 썼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의 마음을 투명하게 알고 싶을 때, 나는 늘 글을 썼다. 온통 싱숭생숭한 마음들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걱정들과 온갖 비수 같은 걱정들이 여기저기서 날아들 때면, 나는 늘 글을 썼다. 글쓰기는 마치 그 모든 것들을 해치우는 무기와 같아서, 글을 쓰다 보면, 안개를 걷어내듯 명료해지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매일 글을 쓰는 것은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서다. 마음이랄 것은, 어딘지 하잘것없어서 매일 조금씩 누더기가 된다. 출퇴근 지하철에 실려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홀로 사무실에 갇혀 있다 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어떤 사소한 문제들이 날아들 때면, 금세 나는 내 마음의 명징함을 반 이상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나의 투명함과 명료함은 반쯤 너덜너덜해져 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백지 앞에 앉으면, 마음은 조금씩 명료하게 빛이 난다. 나의 글쓰기는 내 앞의 어둠을 지시하면서 내게 빛이 되어준다. 그러면, 내게 도래했던 온갖 장애물들, 어떤 종류의 악담들, 또 나를 붙잡고 늘어지며 땅바닥에 떨어뜨리려 했던 어느 질퍽거리는 손길들이 씻겨 나간다. 나는 그런 글쓰기가 비추어주는 빛을 따라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을 믿는다.
글쓰기가 그렇게 나를 살게 할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나를 직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나를 올바로 직시할 수 있다면, 내가 삶에서 아주 이상한 구렁텅이에 빠져 표류하는 일은 없을 거라 믿는다. 내가 무엇을 좇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허상이나 지나친 탐욕은 아닌지, 나는 합당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나의 위치랄 것을 충분히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지, 나는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매일 마주하다 보면, 삶이란 그리 쉽게 망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요 며칠 몸이 무척 좋지 않아, 마음도 함께 자꾸 처지지만, 나는 글쓰기로 이 마음조차 일으켜 세울 수 있음을 믿는다. 하루종일 몸에 도통 기운이 없고 사방에서 몸이 조여들 듯이 처지는 때에도, 글쓰기는 나에게 잠시나마 명료함을 돌려준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아주 명징한 나로 여기 서서 삶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게 된다. 이 전진, 내가 나의 글을 씀으로써 나를 이끄는 이 여정은, 그 무언가가 멈춰 세우거나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나는 끊임없이 글을 쓰며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정신을 잃으려는 나에게 정신을 차리게 독려하고, 많은 것들 앞에서 포기하거나 도망치려는 나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나는 전혀 이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다른 삶을 살았을텐데, 그 삶이 무엇이었을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나는 나의 이 삶을 살기 위해 글쓰기가 너무나도 필요했고, 절대적으로 있어야 했으며, 그렇게 이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글쓰기가 있는 한, 나는 이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며, 또 이 삶을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것이 나의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