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Nov 15. 2023

변호사의 글쓰기

얼마 전에, 무혐의로 끝난 사건의 의뢰인이 나의 장점에 대해 한 말을 지인으로부터 전해듣게 되었다. 그 분은 지인의 지인이었는데, 개인적인 사건들로 여러 변호사를 만나본 분이었다. 나랑은 여러 사건 중 하나를 같이 했던 터였다. 나로서는 사실상 첫 수임을 했던 사건이어서 걱정도 있었고, 그만큼 최선을 다한 사건이기도 했다. 사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며 다소 늘어지긴 했으나, 최종적으로 무혐의를 받고 끝났다.


그 분은 나의 장점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주었다. 하나는, 글을 잘 쓴다는 점이라고 했다. 유달리 내가 쓴 의견서가 좋았다고 했다. 변호사의 글쓰기라는 게 일반인이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수사 단계에서 수사관한테 전하는 의견서라든지, 상대방에게 보내는 내용증명 등은 '일반인이 보기에도'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나아가 법관이 볼 때도, 법리도 법리지만 잘 읽히는 매력이랄 게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사실, 변호사가 글쓰는 직업이라는 것이,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아주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크게 대학원을 거쳐 강사로 사는 삶, 언론사에서 기자로 사는 삶, 변호사로 사는 삶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모두 글쓰고 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싸우고 설득하다 보니 적성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이렇게 의뢰인이 그런 정성과 디테일을 알아주면, 당연히 더 힘이 나고 일에서 보람도 느낀다.


그 분이 두번째로 전한 이야기는, 더 흥미로웠는데 내가 사람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이 반가웠던 건 나는 변호사의 직업이 말하기 이전에 '듣는 직업'이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잘 듣고 때로는 잘 캐물어야만 사건 전반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만일의 경우까지 대비하여 논지를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대충 듣고 대충 쓰게 되면, 거의 반드시 재판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상대방으로부터 공격받을 여지도 생기게 된다.


최근에 내가 거의 전담했던 사건 하나는, 상대방이 제출한 의견서 그 자체로 반박할 게 너무 많았다. 앞 뒤 말이 모순되거나, 스스로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게 많아서 그것만 일일이 지적해도 거의 주장의 일관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모르면 몰라도, 상대 변호사도 너무 바쁜 나머지 의뢰인으로부터 대충 전해들은대로 쓰면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애초에 변호사도 말이 안 된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의뢰인이 써달라는 대로 써주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잘 듣고, 잘 쓰기. 혹은 잘 보고, 잘 말하기. 이 원칙은 변호사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해왔던 거의 모든 일의 원칙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글쓰기 수업은 기상천외한 가르침 스킬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그냥 참가하는 분들이 써온 글을 성심성의껏 여러번 읽으며 잘 보고 그의 마음을 잘 들으면 된다. 그러고 나면, 누구나 한 편의 글에 대해서도 잘 말할 수 있게 된다. 글쓰기도 언제나 잘 듣고, 잘 보고, 잘 경험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보면, 나는 꽤나 나의 본래 원칙을 잘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아가 내가 '잘 듣고 잘 쓰는' 삶을 살아가는 일을 잘 따라간다면, 이 삶이 나름대로의 성숙에 잘 이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마다의 삶에는 핵심이나 근본이랄 게 있기 마련이다. 내 삶은 '잘 듣고 잘 쓰는 것'에 애쓰며 살도록, 한 평생을 그에 몰두하며 완수하도록 운명지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삶이라면 역시 괜찮지 않나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