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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Nov 11. 2023

내 삶의 원칙은 시간에 대한 절박함

내 삶에 하나의 실천 원칙이 있다면,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하자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에는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대개 내가 절실하리만치 하고자 했던 일들은 대부분 그 시절이 지나면 할 수 없으리라 믿었던 것들이다. 그 절박함으로,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많은 책을 실컷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을 거야, 같은 마음이 20대 시절 수천 권의 책을 읽게 만든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그렇게 책을 읽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생각하기로, 30대에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느라,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대학생일 때, 조금은 현실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져 있을 때가 내게는 책을 쌓아놓고 읽을 수 있는 마지막 시절일 것 같았다.


서른 무렵에, 로스쿨에 간 것도 그게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였다. 이를테면, 마흔쯤 되어서는 더 하기 어려울 것을 해보는 게 하나의 기준이었다. 마흔에도, 쉰에도 삶은 바꿀 수 있겠지만, 서른 만큼 크게는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저 평생 책만 읽고 글만 쓰고 살아가고 싶은 구석도 없진 않았지만, 서른의 마지막 도전 같은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삶을 한 번 바꾸어 보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그야말로 매 순간 매 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절박한 시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 그 때에는 수험 공부도 해야했고, 학비도 벌어야 했기에, 그 시절에 해야만 하는 것들로 꽉 차 있던 날들이었다. 공부를 끝낸 새벽마다 거의 시간을 납치해서 쥐어 짜내듯이 그 시절의 소중함에 대해 기록하려 했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비롯한 내가 썼던 에세이집들은 그렇게 절박했던 시절의 기록들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늘 내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점심 시간에 회사 주변 사람들을 만난다든지, IP 로펌이나 그곳의 동료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든지, 늘 내가 이곳에 다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제는 독립을 하게 되면, 역시 이 독립을 해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고민하고 있다.


먼저, 나는 아이의 마지막 유년기라 할 수 있는 해를 조금은 더 시간 여유를 갖고 함께 보낼 수 있어 다행일 거라 생각한다. 지난 겨울에는, 늘 회사를 마치고 오면 어두워서 아이랑 눈사람 한 번 만들기 어려웠다. 주말에는 눈이 이미 녹았거나 더러워진 뒤였다. 회사를 마치고 오면 늘 늦은 저녁이었기에, 요리 한 번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나는 시간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조금 더 가족에게 시간을 잘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국선변호인을 해보고자 한 것도 마찬가지에서의 생각에서였다. 소속 변호사가 국선변호를 겸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겸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밖에도 소속 직장인으로서 하기 어려웠던 여러 일들을 부지런히 시도해볼 생각이다. 언젠가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갈 때가 올 수도 있으니, 역시 이 시절도 한정판 시절이라 믿고, 내가 이 시절에만 해볼 수 있는 일들에 절실하게 매달려 볼 것이다.


인생이 한정판이고, 인간은 늘 깍여나가는 시간 속에서 죽어간다는 것, 모든 시절에는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 그런 관점이 내 삶의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은 나중에 하자, 오늘은 되도록 오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러면 대개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되는 듯하다. 최선을 다해 매 시절의 최선을 살면, 좀처럼 후회하기 어려운 삶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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