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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07. 2023

퇴사하고 처음 공원을 달렸다

퇴사하고 처음으로 오전에 나가 공원을 달렸다. 두 바퀴 정도를 달리고 나니, 숨이 차올라서 운동기구들로 적당한 근력운동을 했다. 날이 좋아서인지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옆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라면 형광등 켜진 시멘트 벽의 회사에 붙박혀 있을 시간이었는데, 하늘과 나무와 아이들의 소리가 있는 세상에 나와 있다는 게, 어딘지 믿기지 않았다.


어릴 적에 내가 생각했던 삶이란, 어딘지 늘 거닐면서 하늘 아래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땅굴을 판 열차를 타고 회색빛 시멘트 거너물에 들어가 하루 종일 있다가, 역시 땅굴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끼어 돌아와 지쳐 버리는 삶을 꿈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일을 갖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더라도, 거기엔 나름의 '이미지'랄 게 있었다. 청년 시절에는, 햇빛이 드는 서재에서 종일 글을 쓰거나 강단에 서는 삶을 상상했다. 그 또한 내게는 햇빛과 하늘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오로지 돈만 생각한다면야, 당연히 로펌을 계속 다니면서 연봉 협상을 하고, 또 나의 경력을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더 바쁘고 더 돈을 많이 주는 곳들로 이직해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말하자면 보다 자발적인 삶이었다. 일을 하는 건 좋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충실하고 싶었다. 빛이 있고 바람이 있고 하늘이 있는 세상을 거닐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찾아다니며 일을 찾고 성실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타인들의 경기에 속해 따라가느라 미치고 지쳐서 나를 잃는 삶을 원하진 않았다.


변호사로서 내가 생각하는 조화로운 삶은 대략 이런 것이다. 한 달에 두 건 정도의 사건만을 수임하면서, 사건 하나하나에 충실한다. 이따금 국선 변호인 일 등을 해보면서 삶에서의 또 다른 가치를 찾고 경험해 보기도 한다. 관심있는 콘텐츠 분야나 저작권 분야 등에서 자문과 강의를 때때로 겸하면서 나름의 경력을 쌓는다. 나는 그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쓰나미 같은 사건들에 허덕이면서 일을 쳐내듯이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을 찾고, 주위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사랑과 우정과 평안이 있는 삶을 만들어간다.


물론, 인생이라는 게 언제나 뜻대로는 안되겠지만, 뜻대로 살아보려는 흉내라도 내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하원을 하러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버스에서 폴짝 내게로 뛰어내린다. 나는 아이가 아직 세 살즘 되는 양 들어 안고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을 혈당 쇼크로 중간에 잠이 들어버리지만, 운동을 하면 밤까지도 꽤나 에너지가 남아 돈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일을 하더라도 나의 흐름을 유지하는 한 삶의 기분이 살아 있다.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강제로 매일 지하철에 실려다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 같은 느낌을 준다.


2024년은 내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실험을 하는 해가 될 듯하다. 일들은 점점 늘어날테고,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삶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신경써야 할 일들도 더 많아질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삶을 사랑할 수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이 새로운 도전의 목표이다. 운동하고, 건강하고, 사랑하고, 성리하고, 충실하고, 병들지 않고, 단단하고, 온전하고, 꾸준하게 이 삶을 살아내보는 것이 나의 꿈이자 내 삶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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