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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Dec 14. 2023

삶이란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나아가는 것

아내는 내가 개업을 한 뒤로 더 변호사다워졌다고 했다. 사실,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놀면서 나태해질까봐 걱정했는데, 매일 상담하고 일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다소간의 기우였다는 걸 인정하는 듯하다. 그리고 모든 게 나의 직접 책임으로 이루어지고,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더 몰입할 수밖에 없다보니, 더 '변호사'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회사에 있을 때랑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책임감이 더 커진 건 사실이다.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아무래도 책임 귀속이라는 게 일차적으로는 파트너 변호사, 궁극적으로는 대표 변호사에게 귀속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과 별개로 책임 자체는 덜 지거나 분산해서 지게 된다. 그러나 소속 근로자가 아닌, 스스로 사건 수임에서부터 해결까지 전담하고 책임지는 입장이 되니, 공기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 있다.


어떻게 보면, 회사를 나갔을 때 두러웠던 것도 그렇게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책임에 대한 공포는 매우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아이 갖기를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에 들어가거나 직위를 얻거나 일을 하게 되면서 생길 책임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신 '유예'라는 공기 속에 머물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느낀 것 하나는, 그렇게 '공기가 바뀌는 것'에 용기를 낼수록 삶이 점점 다음 단계로 가게 된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처음 강의를 하는 것도, 글쓰기 수업을 하는 것도, 방송에 나가는 것도, 낯선 공부를 하는 것도, 대학원을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도, 새로운 직장에 가는 것도, 직장을 나서는 것도 모두 두려움 한 모금씩 마시면서 해야하는 일이었다. 결혼도, 육아도, 이사도, 심지어 운전도, 낯선 사람과 밥 먹는 일도, 공기가 바뀌는 두려움 한 움큼씩 쥐어야 하는 일이었다.


막상 그 공기를 뚫고 들어가보면, 새로운 호흡이 가능해진다. 아, 인간이란 이런 공기도 숨쉴 수 있는 존재였구나, 하고 알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놀랍게도 내가 그 동안 숨쉬고 있던 공기는 어딘지 약간 오염된, 정체된 공기였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곳의 공기가 더 낫다, 더 상쾌하고, 자유롭고, 고양되고, 드높다, 그렇게 느낄 때도 있다. 물론, 악취가 나는 곳으로 잘못 왔다면 서둘러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모든 방문과 창문을 걸어잠그고 집안에 있으면 아무리 공기청정기를 돌려도 실내 유해물질과 이산화탄소에 질식해가듯이, 때론 문을 열고 나가봐야만 알 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날, 밖으로 나가면 죽을 것 같지만, 막상 문 열고 나가면 열린 하늘과 투명한 공기에 숨통이 트일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면, 나오길 잘했다, 산책하길 잘했다, 아침 일찍 공원 한 바퀴 달리길 잘했다, 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믿어버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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