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유없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 나는 '이 사람 조금 졸린가보다.'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이 사람 조금 지쳤나보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왠지 졸려 보여, 왠지 조금 피곤하거나 지쳐보여, 라고 말하면, 별 일 아닌 것으로 짜증을 내던 상대방이 다소 놀라면서 "그래? 그런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경우가 은근히 자주 있다.
사람은 조금 졸리거나 지치면,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거칠어지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고, 예민해진다. 그런데 대개는 스스로 그런 피로감이나, 누적된 지침, 다소 졸리는 순간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매일에는 그런 졸리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기도 하고, 혹은 인생을 길게 보면 유달리 누적된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는 시절이 있기도 하다. 그럴 때, 사람은 확실히 어딘가 이상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진짜 이상한 사람이 되거나 나쁜 인간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진짜 존재 자체가 이상할 수도 있겠으나, 대개는 그를 둘러싼 몸과 마음과 환경의 상태나 상황 같은 것들이 그를 이상한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 상대를 섣불리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는 것보다는, 요즘 좀 지쳤나보네, 요즘 좀 거칠어진 걸 보니 많이 피곤한가 보네, 요즘 잠이 부족한가봐, 하고 생각하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누군가는 진짜 이상한 사람으로 가는 길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상한 사람을 계속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면, 정말로 쉽게 이상해질 것이다. 그러나 나도 늘 그렇듯이,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이상한 순간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느끼곤 한다.
조금 지쳤나 보구나, 라는 말은 마술같은 데가 있다. 상대와 싸우다가도, 내가 요즘 조금 지쳤나봐, 당신 요즘 조금 지쳤나봐,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싸움은 누그러진다. 지쳤다는 말에 "나는 지치지 않는다"라고 우기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매일의, 어느 정도의 지침을 이해받길 바라고, 또 누구나 조금 지쳐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늘 조금씩은 이상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나는 당신을 신뢰하고 당신이 좋은 사람인 걸 안다는 말이, 조금 이상한 오늘의 당신에 대한 이해 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나도 매일 이상하다. 매일 지치는 순간이 있고, 유달리 지치는 시절이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상해지고 만다. 짜증이 나기도 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괜히 대화를 나누다가도 날이 선 말들을 나도 모르게 내뱉거나, 배려할 만큼의 여력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누군가가 나를 이상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지 뒤늦게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의 조금 지친 순간을 보아줄 줄 아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에게 그런 말들을 건네고, 서로가 이해받는 순간들이 누적되어갈수록, 그런 걱정도 사라지는 걸 느낀다. 관계의 좋음이란, 역시 서로가 지쳤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시선이 존재해주는 가운데에만 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