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서로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는 클리셰가 된 장면이지만, 은근히 현실에서는 그리 자주 겪게 되는 모습은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꼭 끌어안고, 당신을 위해 울어주는 모습, 혹은 우는 누군가를 꼭 끌어안고 우는 당신을 지켜주는 모습이란, 생각보다 인생에서 많이 만나는 경험은 아니다.
한 사람이 너무나 큰 슬픔이나 상실감을 어쩌지 못해서,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염없이 우는 것밖에 없을 때, 그런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순수하게 당신이 우는 동안 당신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 누군가를 꼭 끌어안아주는 일을, 인생에서 몇 번이나 만나게 될까? 감동에 겨워서든, 어떤 한맺힘 때문이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펑펑 쏟아질 때, 그 누군가가 나를 꼭 안아주고, 그렇게 내가 마치 그 누군가에게 안겨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안심해서 한참을 우는 일이란, 인생에서 몇 번이나 겪게 될까? 그런 순간은 영화나 만화에서만큼 인생에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그런 드문 일이, 아이가 생기게 되면, 참으로 자주 있게 되는 것 같다. 밤에서 깨서 악몽을 꾸다 영문없이 무섭다며 우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괜찮다면서, 진심을 다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만 싶은 그런 순간들이 생겨난다. 아이는 언제나 진심으로 울고, 부모는 진심으로 아이에게 마음이 닿길 바라며, 아이를 품에 끌어안는다. 그렇게 삶에서 드물고, 영화에서는 흔한 일들이, 삶에서도 흔해지는 경험을 거쳐가는 것 같다.
내가 어느 존재를 끌어안고 구슬피 울었던 일 중에는 나의 가족이었던 강아지에 대한 것이 있었다. 실제로, 종종, 그 누군가를 끌어안고 우는 사람 보다도, 자신이 오래 사랑하던 강아지나 고양이를 꼭 끌어안고 우는 사람들을 본다. 이제 곧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의 오랜 존재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온 존재를 내어준 채 울음과 슬픔 속에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체면이나, 의미나, 계산이나, 자기방어 없이, 그렇게 누군가에 안겨서, 누군가를 끌어안고, 누군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저 위로하고 달래주고 싶은 진심 하나로, 혹은 그 누군가에게 보호받으며, 가장 다정한 손길을 받으며 그렇게 울곤 한다. 삶에서 그보다 인간적인 장면은 아마 드물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은 대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너무 가깝지 않으려 애쓰면서, 서로에게 적당한 공간을 허락하면서, 접촉하기 보다는 존중하면서, 각자를 단단한 로봇이나 갑옷을 두른 병사처럼 대해주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에게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유지하던 사회 속의 거리라는 것, 관계 속의 거리감이라는 걸 허물게 되는 때가 온다. 그저 누군가에게 안긴 채로 엉엉 울어야만 하는 때가, 삶에는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순간이, 삶에서 가장 빛나는 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