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Jan 03. 2024

우리는 고통을 다루며 자기자신이 된다

아이는 숙제하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숙제를 즐기는 자기만의 방법을 계발했다. 이를테면, '아래 문장을 읽고 동그라미 표시를 하세요.'라는 숙제가 있으면, 억지로 읽은 다음에 동그라미 표시란에 자기가 좋아하는 포켓몬스터를 그리는 식이다. 아니면 한 페이지를 한 다음 스스로를 채점 하면서, 동그라미가 아닌 온갖 다양한 모양으로 채점을 한다.


나는 아이가 그렇게 창의적으로 자기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걸 보면서, 어딘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나는 그게 바로, 한 인간이 고유한 존재가 되는 길이자, 누구든 자기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른에게도 매우 중요한데, 가령, 로스쿨 수험생활에서도 이런 '고통 승화'가 결정적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낯선 지식을 강제로 암기하는 건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나는 이걸 어떻게 즐길지 알아내면서 수험공부에 적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제일 좋은 방법은 수험공부를 내용으로 일종의 책을 쓰는 것이었다. 나름 내가 디자인한 요약노트를 만들어가는 게, 내게는 약간의 창의성을 더한 '재미'로 공부하는 방식이었고, 그것이 역시 내게 가장 어울리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삶의 다른 고통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고통은 우리가 '비틀면서'만 제대로 버틸 수 있다. 고통을 비틀어서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유머 혹은 위트다. 아내와 나는 우리에게 일어난 다소 불의의 사건들에 대해, 약간 우스꽝스럽게 여기자는 무언의 합의 같은 게 있다. "역시 우리 인생은 시트콤이야. 거침없이 하이킥이 따로 없네." 시트콤을 보자, 거기에는 온갖 비극들이 넘쳐난다. 고부간 갈등, 학교에서의 사건 사고 같은 것들이 그러나 '유머'로 승화된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포르트-다(frot-da)' 놀이를 통해 자기 손자가 어머니의 부재를 어떻게 견디는지 관찰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사이, 아이는 벽에다 공을 던지고 그 공이 돌아오는 놀이를 만들어 반복하면서 그 '부재'를 견딘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기 세계의 빈틈을 채운다. 고통이라는 결핍을 채울 방법을 스스로 창조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된다. 누구는 그렇기 신을 찾고, 글쓰기를 시작하며 작가가 된다.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를 필두로, 겁쟁이 사자,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등이 저마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사자는 용기를 얻기 위해, 허수아비는 뇌를 얻기 위해,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얻기 위해 오즈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여행의 과정에서 각자 원하던 것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창조'한다. 사자는 그저 용기를 내고, 허수아비는 그저 열심히 생각하고, 양철 나무꾼은 동료들을 공감하며 돕는다. 그들의 여행은 그들의 결핍을 사실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채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계기였다. 오즈는 굳이 필요 없었다.


고통이나 결핍은 나쁜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승화시켜야 할 무엇이다. 고통을 회피하다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웅크린 번데기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 고통을 헤쳐나가는 각자만의 길은 각자의 그림을 그려내고,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날개를 갖게 한다. 고통은 대개 회피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치 각자의 무늬를 가진 협곡들처럼, 자기 자신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 배운 5가지 깨달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