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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2. 2024

꾸준히, 계속, 많이 해야 하는 이유

지난 10여년간 책을 쓰면서, 내게는 매우 중요했던 세 권의 책이 있었다.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이다. <분노사회>는 당시 언론사 50군데 정도에서 다뤄주었고, 지금까지도 언론사에서는 나를 이 책의 저자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세바시'에 출연한 것도 순전히 이 책 덕분이었다. 얼마 전에는, 국민일보에서 분노사회 10주년 특집으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아직도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역시 여전히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책으로 나는 청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론가라는 인상을 남겼고, 인스타그램에는 해시태그만 1000개가 넘는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이후에는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참 많았다. 웬만한 기업에는 다 다니면서 글쓰기 강의를 했다고 느껴질 정도였고, 이 책 덕분에 EBS나 JTBC를 비롯하여 출연한 방송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내 삶에 외적으로 크게 영향을 준 책도 있지만, 출간 당시를 제외하고는 큰 흔적 없이 지나간 나머지 10권 넘는 책들도 있다. 물론, 책이라는 게 외적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내적인 의미가 더 크기도 하다는 점에서 어떠한 '책 쓰기'도 의미 없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삶에서 어떤 것들은 다른 것보다 인상적인 궤적을 만드는 듯하다.


흥미로운 건, 이 세 권의 책이 내 삶에 그토록 큰 영향을 줄 것을 출간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분노사회>는 대학시절 그야말로 어느 비평수업을 듣다가 즉흥적으로 떠올라 겨울방학 동안 반짝 몰입해서 썼던 책이었다. 나로서는 그저 학부를 졸업하기 전에, 사회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책 한 권 정도 남겨놓고 싶다는 마음에서 썼던 책일 뿐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그야말로 편집자님의 혼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에 가까웠다. 나는 로스쿨생이었고, 원고를 정리할 시간이나 집필에 몰두할 시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편집자님의 요청에 그간 모아두었던 원고들을 한 무더기 건넨 것이었다. 그 원고들이 편집자님의 마술같은 손길에 따라, 3부로 구성되고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돌아왔다. 더군다나 요즘 사람들이 힐링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도 아닌 그런 '사회비평에세이' 같은 것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않았다(<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역시 같은 편집자님의 마술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면서 하나 알게 된 것은, 세상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기옥을 모으듯 회심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의외로 별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내게도 그런 책들이 한 가득 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전혀 예상할 수 없게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뿐이다. 많이 시도해보는 것이다. 책을 2, 3권 내고 좌절할 게 아니라, 20, 30권 정도 써보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차르트의 곡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수천 곡을 작곡했었다고 한다.


삶이란, 대개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가끔은 명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명쾌하게 느껴지는 것 하나는, 우리의 의지가 많을수록 삶에 의미있는 순간들을 많이 실현한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뜻깊은 경험을 얻으려면, 한 번의 여행보다는 열 군데를 다녀보는 게 낫다.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면, 회심의 10편을 쓰는 것보다 꾸준하게 100편을 써보는 게 낫다. 관건은 지나치게 기대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계절처럼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삶에 결정적인 순간들이, 한 번씩 온다. 우리가 가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나는 이유는, 매년 꾸준히 겨울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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