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Mar 05. 2024

삶에는 반드시 싸워야하는 순간이 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싸워야 할 문제 앞에서 회피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왠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싸우는 걸 좋아하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분쟁은 가급적 피해가고 싶어한다. 덮을 수 있으면 덮고, 지나갈 수 있으면 지나가고,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에서는 투쟁이 필요한 때가 있다. 평화주의자로 살면서 어디까지나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마음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는 때라는 게 오기도 한다. 나아가 어느 때는, 싸움이야말로 의무이고 평화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 비겁한 회피가 되는 순간도 있다. 정확히 말해, 사람은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는 저마다 다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오로지 돈을 위해 싸울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싸움은 돈을 넘어서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무기력과 회피에 찌든 자기 자신을 구해내기 위하여,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점점 시들어가는 자기 안의 어떤 영혼의 불씨를 살리기 위하여, 때론 스스로 싸울 수 없는 그 누군가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작가에서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내게는 중요한 싸움의 순간들이 있었다. 이 세상의 기성질서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내가 생각하는 벽을 부수기 위해, 때로는 내가 아닌 그 누군가의 목소리나 나와 같은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싸웠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는, 그야말로 검투사가 되어 검사랑도 싸우고 법원 조정실에서 삿대질하는 상대방변호사랑도 싸웠다. 나의 삶은 투쟁이 필요한 영역 쪽으로 흘러왔던 셈이다.


사실, 어느 시절에는 싸우기 보다는 내 안으로 한없이 움츠러들기를 바라기도 했다. 문학과 고독을 사랑하며, 가능한 한 마음의 무한한 평화 속에서, 아예 이 세상을 저버리고 먼 곳의 아웃사이더로 살기를 꿈꾸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의 기억이 무색하게도, 나는 나의 존재 의의를 많은 것들과 싸우면서 얻고, 또 누군가를 위해 대신 싸워주면서 얻어야 하는 삶이라는 걸 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쓰기 강의에서 자주 글쓰기란 '적대'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를테면, 글쓰기란 우리에게 매일 쏟아지는 타자의 기준, 소비사회의 획일화된 욕망,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 그리고 부당한 편겹과 선입관을 거대한 폭력으로 조장하는 어떤 괴물들을 집요하게 적대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글쓰기란 마치, 매일 우리 안에 쏟아져 들어오는 세균과 싸우는 백혈구의 일을 닮았다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고요와 고독, 평화를 사랑하지만, 나를 일으켜 세워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은 매순간의 의지에 서려 있는 어떤 싸움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알 듯하다. 결국 삶이란 그 무언가에 맞서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찾아내고 구해내는 과정이다. 무엇과 싸워 무엇을 구해내고 지켜낼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꾸준히, 계속, 많이 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