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Feb 15. 2024

관건은 체력이 아니라 즐김

흔히 공부나 일은 물론이고, 창작까지 '체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나는 한 번도 이 말에 공감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나 일, 창작을 위해 애써 체력을 키우려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애써 운동을 시작했던 건 극히 최근의 일이었는데, 그 전까지 공부나 창작 등에서 일부러 '체력'을 길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부를 오래 하면 피곤하니, 아무래도 체력이 중요하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창작을 하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니 역시 '창작은 체력이다' 같은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에 한정하면, 공부나 창작은 체력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그것은 즐거움의 문제였다.


관건은 공부든 창작이든 일이든 '즐길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체력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체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느 정도 상관이 없었냐면, 내가 수험 생활과 육아, 돈벌이까지 3중으로 하면서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을 때도, 글 쓰는 데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에너지가 생기는 듯했고, 그렇게 쓴 글들을 모아 책을 여러 권 내기도 했다.


공부는 체력인가? 역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로스쿨 3년 동안 운동이라고는 한 적이 없었고, 기껏해야 식후 간단한 산책 정도를 하는 게 전부였다. 공부를 위해 체력이 중요하다면서 헬스를 하는 경우들도 있었지만, 내게 있어 공부에 체력은 전혀 문제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공부를 어떻게 나의 방식으로 즐길지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공부를 '누리는' 방법을 찾으면, 거기에 몰입하고, 즐기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물론, 나이 50, 60, 70을 넘어 장기적으로 인생에서 어떤 일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젊었을 때부터 건강과 체력도 챙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30대 중반이 된 시점부터는 운동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조금 더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 그러나 젊은 날, 공부나 창작, 일에서의 몰입과 성과를 위해 당장 운동부터 해야한다는 것에 나는 공감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체력이나 체격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그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어떤 요령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글쓰기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가까운 곳의 반응을 찾는 것이 있었다. 가령,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반응을 좇는 것이 하나의 '즐길 방법'이었다. 혼자 절에서 벽만 보고 3년 내내 글만 쓰라고 하면, 확실히 엄청난 체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을 써서 매번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반응을 듣고,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다 보면, 그 반응 자체가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된다. 15살, 처음 소설을 썼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보여주었고, 어머니의 칭찬으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년간 그 방식은 큰 틀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재밌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험공부의 경우에도, 나름의 즐기는 방식을 찾았다. 예를 들어, 나는 나만의 책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공부할 때, 공부를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었다. 거의 모든 과목의 암기장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면서, 일종의 창작의 즐거움을 가미했다. 그 다음에는 그렇게 만든 내용을 모두 나 자신에게 '강의'하며 '녹음'했다. 그것도 재미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누워서 내가 나에게 강의한 녹음파일을 들으며 체력을 보충했다. 나름대로 다 즐길 방법을 찾으니, 몰입되고 할 만해졌다.


이건 심지어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육아도 체력이라곤 하지만, 반복적으로 재미없는 육아를 오래 하기는 지옥처럼 견디기 힘든 일이다. 대신 육아에 창의성을 더하고, 함께할 수 있는 놀이,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는 방법들을 찾아내면, 육아도 놀이가 되었다. 그러면 알아서 몰입이 되고, 즐김이 되니, 체력은 문제되지 않는 순간들이 온다.


나는 더 이상 체력과 건강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간과해서도 안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모든 일에서 체력이 전부라는 식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몸에 근육이라는 걸 만들어보고자 처음 시도해본 건 만으로 35살이 처음이었다. 나는 남들보다 체력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어서, 하루 8시간 이상은 꼭 자야 하는 편이었다. 무엇이든 엄청나게 빨리 배우는 편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뒤처질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떻게든 즐길 요령을 찾아내는 걸 좋아했다. 그러고 나면, 대개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내게 관건은 체력이 아니라 즐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에서의 나는 죽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