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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Mar 06. 2024

교활한 자기계발 산업과 박탈감 문화

Unsplash의Lala Azizli


우리 사회의 자기계발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은 매우 교활한 데가 있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가령, 매일 지옥철에 시달리며 출퇴근하는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월 1000만원씩 버는 나에 비하면 어리석게 짝이 없다는 식이다. 타인의 삶, 노동, 라이프스타일을 비하하면서, 그와 다른 '천국'이 있는데 당신만 모른다는 식으로 '조롱'하는 게 이 시장의 흔한 특성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박탈감' 조장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지점도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이나 욕망을 매우 편협하고 뻔한 방식으로 획일화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 수억 원대의 자동차, 매일 해외의 호캉스 여행을 다니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 욕망을 '화려한 소비'로 획일화시키고자 했다. 이런 소비생활을 누리는 자는 의심의 여지 없는 '위너'이고, 이를 거부하는 건 패배자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월 1000만 원이란 대단한 성취이고, 사람에 따라 그런 화려한 소비생활을 지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월 1000만 원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것으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업체를 일구거나, 제대로 된 능력을 쌓아 올려서 실제로 월 1000만 원에 상응하는 가치를 생산하고, 그에 따라 지속 가능하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월 1000만 원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며, 그 이상의 돈을 벌어도 마땅한 사람들도 세상에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타인의 욕망이나 박탈감을 이용하여 일종의 기망을 섞어 월 1000만 원을 일시적으로 벌어낸 것은, 정당한 가치도, 능력도,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고도 볼 수 없다. 오히려 형법 제374조는 그처럼 타인을 '기망하여'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것을 정확히 '사기죄'라고 보아 징역 10년 이하로 처벌한다. 우리 사회에 가득했던 '자기계발' 사업에 과연 '기망'이 없었는지 엄격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꼭 자기계발 산업이 아니더라도, 일명 '절망이 없는 인스타그램' 등 SNS의 유행으로 서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양산되고 있다(개인적으로 내가 쓴 책 제목이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이기도 하다). 나만 빼고는 모두가 '월 천'을 그야말로 너무나 손쉽게 버는 사회, 나만 빼고는 모두가 코인 대박으로 엑싯하는 사회, 나만 벼락거지 되고 나머지는 모두 10억짜리 부동산은 보유한 사회라는 게 우리 사회의 어떤 정서를 말해준다. 그 정서란 무한한 박탈감이다. 


어느 한 두 사람의 잘잘못은 둘째치고, 우리가 놓여 있는 문화적 환경, 감정적 환경 만큼은 올곧게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기계발' 자체가 나쁜 건 아니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개개인이 성장을 도모하는 모든 일들이 일종의 자기계발이고, 나는 그런 개인적, 인격적, 사회적 성장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내 몸에 대해서부터 윤리나 정신, 사회적 능력과 경력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자기계발이 필요한 삶을 산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자기계발이 일종의 기망이 되고, 장사가 될 때, 또 다른 삶의 악조건이 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해버린 이 '전방위적 박탈감 조장 문화'와 지속 불가능한 '기망'에 뿌리내린 한탕주의, 가치의 획일화, 삶의 성실한 의지와 삶에 대한 긍정을 오히려 갉아먹는 이런 문화는 매우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활한 여우가 토끼를 사냥하듯, 우리의 삶도, 사회도, 문화도 사냥당해 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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