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집의 저자교를 끝냈다. 책 출간 자체는 익숙한 일이지만, 매번 책을 교정하는 과정은 어딘지 모르게 새롭다. 평소에 쓰는 글들은 틈새 시간을 짜내어 어떻게든 그 날의 감상 같은 것들을 풀어놓는 것이라면, 책을 만드는 과정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고이 모시듯 정돈하고, 정갈하게 다듬고, 지우고, 추가하고, 새로 쓰면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주는 선물을 준비하는 느낌이다.
살아가는 일이란, 대개 매일의 임기응변으로 이루어진다. 갑자기 아이가 밤에 열이 나고, 사기 사건을 맡게 되고, 강의나 인터뷰 요청을 받고, 타이어에 펑크가 난다. 한 해를 돌아보면, 그렇게 해치우듯 채워진 나날들로 가득하다. 내게 글쓰기는 그런 일들의 틈새에서 피어난, 돌담 속 민들레 같은 것이다. 책 쓰기란, 그런 민들레 꽃들을 꺾어 꽃다발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육아 또한 꼭 그와 같다.
육아는 정신 없는 날들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나날들 속에 핀 꽃과 같다. 온갖 집안 일, 돈 문제, 현실에서의 경력과 투쟁 등에 시달리다가도, 나는 아이 손을 잡고 공원으로 달려나가곤 했다. 우리 셋만의 바닷가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런 나날들이 스냅 사진처럼 나의 글로 남아 있고, 나는 그런 나날들을 엮어 책을 만든다.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나온다는 게 역시 감개무량하다.
개인적으로 책을 낼 때마다 소소한 내적인 목표랄 게 있다. 이를테면, 저작권법 책은 저작권 지식이 필요한 창작자나 에디터에게 닿길 바랐다. 사랑이나 글쓰기에 관한 책은 그에 대해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아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이번 책은 역시 삶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운석이 떨어진 이후의 지구에서의 삶처럼 전혀 다른 세계가 도래하는 이 '육아'를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육아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맞딱뜨린 사람들이, 그 시간의 가치를 함께 보고 어루만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사실, 도움을 준다는 것도 거창하고 그저 함께 공감하기만 해도 그걸로 성공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첫 장에 실린 <그럼에도 육아>는 지난 10년 이상 칼럼을 써오면서, 내 작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읽힌 칼럼 제목이다. 온라인 기사에 들어가보면, 이 칼럼에 댓글을 달려고 회원가입을 했다는 댓글이 정말 많은데, 댓글 하나하나가 라디오 사연 같아서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 칼럼을 잘 읽었다는 연락을 여기저기서 어찌나 받았는지, 사실상 이 책을 내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육아>를 필두로, 나는 육아에서 느끼고 경험하고 얻었던 모든 가치에 대해 이 책에 담으려 했다. 교정을 보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이 글들을 남겨놓길 정말 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데, 나의 아이가 이 책을 집어들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면 역시, 글쓰길 잘했다, 육아하길 잘했다, 아이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태어나길 잘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