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중은 없는 거였네." 여동생은 울면서 말했다. 여동생은 일주일 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 전, 왠지 그날따라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기차표를 검색했다고 했다. 그러다 별 생각 없이, 다음 주에 가기로 했으니까 그냥 다음 주에 가야지, 하고 앱을 닫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날 돌아가셨다.
여동생은 사흘 내내 울었다. 할아버지가 너무 많은 사랑을 줬던 것 같아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삶에 나중은 없다. 매일 결단해야 한다. 오늘 사랑하러 갈 것인가, 내일 떠나보낼 것인가. 나도 어느덧 마흔을 향해 가면서 느끼는 게 꼭 그와 같다. 보고 싶은 사람은 오늘 봐야지, 미루다 보면 영원히 볼 수 없게 된다. 오늘 결단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하얀 재가 된 할아버지를 보면서, 삶이란 참 덧없는 것 같다가도, 그 앞에 모인 친척들을 보면서, 삶이 남기는 것이 하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사랑을 남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었다면, 그 사랑은 남아서 그를 살아가게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내 생각에는 둘 다 아닌 것 같다. 호랑이도 죽어서 새끼에게 사랑을 남기고, 사람도 죽어서 사람에게 사랑을 남긴다.
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는 첫 순간부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였다. 나는 제법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내가 처음 기억하는 그 존재가 되려면 아직 이삼십년은 남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집안의 가장 어른이었는데, 나도 그리될 날이 올 것이다. 수많은 삶의 풍파를 경험하고, 또 여러 죽음과 상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꿋꿋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나이가 들어,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그런 존재가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자주 할아버지의 부모님이나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참 눈물을 쏟곤 했다. 돌아갈 수 없는 먼 고향 땅의 마을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막내 꼬마에 불과했던 자기가 이렇게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어른이 된 것이 믿을 수 없다면서, 본인의 어머니나 할아버지를 향해 이야기하곤 했다. 할아버지도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이겨낼 힘을 달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주눅들 것 같을 때, 용기가 필요할 때, 자신감이 필요할 때 할아버지한테 받은 사랑을 생각해. 그럼 나 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너에게 그 마음을 남겨두려 하신거야." 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삶에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너무도 많다. 주눅들거나 상처입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한둘이 아니다. 그럴 때, 떠올릴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묻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요? 이 일을 하는 게 맞을까요? 나는 당신이 말한 좋은 사람일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옳을까요? 그렇다, 라고 말해줄 누군가를 마음에 품어야 한다.
성경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청년 시절이 모두 가기 전에, 인생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신을 기억하라는 전도서 이야기다. 나중은 없다. 오늘 삶을 사랑하고,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사랑을 주어야 한다. 삶이란,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