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단순한 이익이나 감정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살 수 있다면, 참으로 멋질 것 같다. 살아가다 보니, 인간의 삶이란 첫째로는 거의 이익에 따라 좌우된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된다. 이익에 따라 직업을 얻고, 사람을 사귀고, 하루하루를 설계하는 건 너무 당연해서 때론 모두가 '이익'이라는 단 하나의 법칙에 따라서만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향은 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두번째로, 삶은 주로 감정에 휘둘리게 된다. 감정에 따라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며, 사고도 치고, 과대망상에도 사로잡힌다. 우울한 감정 때문에 삶을 거의 제대로 이끌고가지 못하는 경우도 무척 흔하다. 감정만 잘 컨트롤할 수 있다면, 삶의 문제 대부분이 해결된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삶이란, 대개 이익과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달리며 결정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익이나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신념에 따라 살 수 있다면, 그 삶에는 이제 고유성이랄 게 생기는 것 같다. 모두가 이익만 쫓아가고, 감정에만 휘둘릴 때, 누군가는 신념에 따라 살고, 신념에 따라 삶을 결정하며, 신념을 지키고 나아간다면, 그는 무언가 특별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된다.
신념은 단순히 정의로운 무언가만이 아니라, 삶에서 자기만이 이루고 싶은 꿈이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스스로에 대한 약속 등 종합적으로 '나'라는 인간을 이루는 어떤 의지의 결합체다. 이익 계산이나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그런 모든 유혹 가운데에도 마음 속에서 지키는 어떤 '의지'가 신념이 된다. 이 의지의 순간을 늘려나가고, 이 의지가 삶의 중심이 되어갈수록, 그는 빛나는 중심을 가진, 단단한 어떤 존재가 되는 듯하다.
신념은 내가 무언가를 '추구하느냐'도 보여주지만, 내가 '누구인지'도 알려준다. 가령,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나에 대한 믿음과 생각은 동시에 나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과 이어진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믿고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 기준을 찾아가게 되고, 실제로 남들과는 다른 그 사람의 '좋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신념 없이 그냥 살아가면, 말그대로 그냥 돈 밖에 모르고 감정에만 휘둘려 사는, 돈 넣는 대로 움직이는 자판기나 호르몬 입력하는대로 사는 감정 기계로 살게 될 뿐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끝없는 실험과 도전을 받는다. 신념을 지키고 싶지만, 지키지 못하는 순간들도 많이 맞이한다. 감정이나 불안, 두려움 때문에 신념을 포기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기만의 신념이랄 것을 어떻게든 만들고, 헝겊으로 기워 붙인 나의 신념을 계속 지켜나가고자 할 때, 우리는 완벽한 한 명의 인간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삶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한 명의 멋진 어른이 되어간다. 한 인간의 멋짐은 바로 그런 노력 가운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