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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22. 2024

원영적 사고를 넘어 삶을 긍정하기

요즘 '원영적 사고'가 무척 핫하다. 삶에서 어떤 크고 작은 실패나 실망이 있더라도, 긍정적인 태도로 '럭키'하다고 느낄 수 있는 태도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태도를 좋아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느끼는 면도 있다. 대개 나는 원치 않은 결과가 삶에서 일어났을 때, 그것을 마냥 긍정적으로 느끼기 보다는,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가고 싶었던 회사들에 줄줄이 낙방하고, 새롭게 채용공고가 뜬 회사에 우연히 들어갔다고 해보자. '원영적 사고'에 따르면, 그 회사가 어떤 회사이건 가서 긍정적으로 느낄 부분을 찾으면 된다. 다른 회사들보다 월급은 적지만 동료들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럭키하다고 느낄 수 있고, 집에서 멀지만 통근버스가 있고 버스에서 잘 수 있어서 럭키비키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적극적으로 그 선택을 더 고유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편이다. 가령, 그 회사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에 최대한 집중해서 다른 곳에서였다면 얻을 수 없었던 무언가를 얻고자 애쓸 것이다. 월급은 적고 워라밸이 괜찮다면, 최대한 열심히 운동하거나 취미생활해서 '바쁘지만 돈 많이 버는 곳'에 간 사람보다 더 낫다고 믿을 수 있는 삶의 측면을 만들 것이다.


만약, 대체로 그다지 좋은 게 없지만 동료 중에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평생의 우정을 맺는 좋은 관계가 되려고 애써볼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더 좋은 회사에 갔더라면 얻지 못했을 소중한 평생 친구를 얻은 셈이 된다. 그런 식으로 내가 애초에 원했던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지금 있게 된 입장에서 고유한 최선의 경험들을 찾으려고 할 때, 삶을 '럭키비키'하게 느끼기도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은 끝없는 욕망의 좌절이었고, 사람들이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길들의 연속이었다. 20대 내내, 나는 철학아카데미 등을 다니면서 인문학 공부를 하고, 혼자 소설쓰고 글쓰는 일을 거의 10년간 이어갔는데, 그런 걸 딱히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소설 공모전에도 수십번 떨어졌고, 그럼에도 계속하여 글쓰고 철학 공부 같은 걸 이어갔는데, 누군가에게 고민상담이라도 했으면 아마 현실적으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해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소설 창작을 열심히 한 덕분에 나름대로 글쓰기를 다듬을 수 있었고, 그간 했던 공부들을 버리지 않고 살려서 인문학 책이나 에세이를 쓰는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내 삶을 필사적으로 긍정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내가 살아온 삶 전체를 조합한 나의 삶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상상력과 감수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비평에세이 같은 나름의 장르를 개척하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같은 책으로까지 나왔다. 그건 가만히 있어도 럭키비키하게 느끼는 천부적 기질 때문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삶을 긍정하고 싶어 발악한 결과였다.


남들보다 늦게 로스쿨에 갔고, 육아를 하며 공부를 했으며, 여러모로 돈도 없고 늦은 경력 같은 것들을 저주하며 괴로워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남들보다 늦게 로스쿨에 갔고, 육아라는 이중고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글로 써냄으로써 어려운 경험을 작품으로 만들고, 나라는 인간의 고유성으로 만들어 가면서 '긍정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그러고 나서는, 오히려 그 모든 게 그랬기에 더 다행이었고 좋았다고 믿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냥 흔한 루트로 칼졸업 이후 로스쿨 빨리 졸업하고, 안정된 다음 아이도 키우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글들을 써낸 나름의 고유한 경험을 가진 작가이자 변호사로서는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게 삶이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사랑할 수 있는 천진난만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써야 하는 것이다. 요즘에도 나는 종종 독립을 선언하고 개업한 지금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의심하고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자유로운 개업 변호사의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개업해서 너무 럭키비키해, 라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유한 삶을 필사적으로 만듦으로써 나는 삶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게 가능한 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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