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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18. 2024

책을 쓰며 올해 나는 더 나 자신이 되었다

올해는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책 두 권을 냈기 때문에, 내년은 조금 쉬어가는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계약된 책이 몇 권 있긴 하지만, '육아'나 '삶의 태도'처럼 인생을 걸고 쓰는 책들은 아니다. 그보다는 약간 교양에 가까운 책들이나, 내 삶의 한 측면에 가까운 책 정도를 써볼까 생각하고 있다. 올해 낸 책 두 권이 근 몇 년의 전후를 둘러싸고 내게는 가장 '무게 있는' 책들이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준 한 작가는 전화가 와서, "이번 책은 뭔가 다르던데요."하고 말했다. 일종의 역작처럼 내가 작심하고 쓴 것 같다고 말이다. 사실 적당히 글들을 모은 그냥 에세이집은 확실히 아니고, 쓴 글들을 발라내고 또 발라내면서 다시 조립하고 체계화하여 하나의 확실한 내 인생의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며 설계한 책이다. 이런 책은 몇 년 뒤나 되어야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일도 나름대로 부지런히 하며 살고 있긴 하지만, 글쓰고 책쓰는 삶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책쓰는 삶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을 듯하다. 몇 년에 한 번씩 자신의 작품이랄 것을 써내며 '연 단위'로 출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쓰면서 매일 글로 소통하고 그러면서 책을 만들어내는 삶을 산다. 말하자면, 몇 년에 한번씩 금덩이를 세상에 내어놓는 작가도 있지만, 매일 사금을 캐고 모으듯 글을 쓰며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사실, 예전에는 나도 한 번씩 금덩이를 만드는 라이프스타일로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한 번, 꽤나 허무하고 위험한 경험을 하게 된 뒤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도 변화가 왔다. 그건 내가 거의 1년간 심혈을 기울여 쓴 <고전에 기대는 시간>이 생각보다 팔리지 않으면서였다. 간신히 2쇄를 찍긴 했지만, 1년 이상을 그렇게 통째로 출간일만 바라보며 사는 게 현명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 뒤로는, 매일 사금을 캐는 삶으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사금이 꼭 거대한 금덩어리만 되어야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책 한권의 묵직한 사유를 좋아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하루하루의 단편적인 글을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매일의 글을 남기되, 그 글들을 다시 엮고 고치며 일관성을 더하고 체계화하여 책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즉 2중으로 사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면, 매일 쓰는 글도 글이지만, 한 권의 책이 나왔을 때는 또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완성품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최근 저작권법에는 재밌는 이슈가 하나 있다. AI로 만든 창작물은 저작권이 인정될 수 없지만, AI로 만든 개별 창작물들을 엮어 하나의 새로운 통합된 작품을 만들면 '편집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AI로 만든 그림들, 글들, 음악들 등을 엮어 하나의 영상으로 멋지게 편집해내면, 이것은 단순한 조합 이상의 창작성 있는 작품이 되므로, 거기에는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책도 마찬가지다. 매일의 글을 어떻게 엮고, 편집하고, 다시 쓰고, 더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그런 탄생의 과정에는 특히, 편집자의 기여가 매우 크다. 조각들로 흩어지고 사라져서 다시 강물에 흘러가버릴 수도 있는 사금들을 함께 어떻게 잘 모아 구성하여 멋진 작품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늘 편집자와 함께 나눈다. 그래서 글은 나만의 창작물이어도, 책은 나만의 창작물은 아니다. 함께 만들어서 더 근사해진 어떤 것이다. 그래서 책을 낼 때면, 내게도 동료가 있다는 기분이 든다. 바로 편집자라는 동료다.


아무튼, 올해는 <그럼에도 육아>와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냈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들이 내 삶을 상징하듯 빛난다고 느낀다. 나는 이 책들로 인해 더 나 자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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