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Nov 14. 2024

계속하는 일이 삶을 살린다

어쨌든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흐른다. 수험시절, 내가 가장 절실하게 배웠던 삶의 진리다. 아무리 온갖 일들이 일어나고, 삶을 무너뜨릴 것처럼 위협하고, 때론 거대한 압박감과 부담감으로 오더라도, 결국 다 지난 일이 된다.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서, 결국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과 걱정, 스트레스도 먼지 같이 털어버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 지난 일이 되고, 나는 살아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갈 길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기차는 달리고, 다 지난 일이 되게 하려면, 자신의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자기의 길이 없으면, 그 자리에 고여 버리게 되고 문제와 함께 썩어버린다. 한 때 내게는 매일 직장에 출퇴근하는 게 가장 큰 위안이었다.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쨌든 나는 오늘 출근하고, 내일도 출근하며 내 길을 가는 것이었다. 문제가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목덜미를 움켜쥐어도 나는 내 일을 하러 가면 되었다.


그것은 꼭 직장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나의 일이 있으면 된다. 가령, 내 주위의 온갖 것들이 귀신처럼 나를 바닥에 주저앉히고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할지라도, 내게 몰두할 일이 있다면 나는 이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내가 반드시 써야하는 논문이나 책이 있다든지, 출전해야 할 시합이 눈앞에 있다든지, 짓고 있는 건물이 아직 있다면, 나는 그 일을 하면 된다. 그것이 때론 삶을, 사람을 살린다.


그러니 역시 사람은 자기의 일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 삶에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 어떤 일을 하면 그것이 내 길을 밝혀줄지, 어떤 일이 나의 하루하루를 쌓아 미래로 데려갈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자신의 일이 있다면, 인간은 이 삶이라는 정글을 넘어갈 수 있다. 어느 날, 아침의 창백한 햇살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밤이 끝나고 맞이한 아침에서, 그래, 끝났구나, 여기까지 왔구나, 하며 투명한 하루로 걸어들어갈 수 있다. 비로소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온다.


저마다의 삶에는 그를 살리는 일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 일은 그의 생활을 지탱하면서, 삶에 의미를 주고, 오늘을 견디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끝도 없이 떠나는 여행이 그의 일이다. 여행길을 걸으며 그가 속해왔던 모든 현실은 점점 탈색되고 벗겨진다. 그 앞에는 계속 걸어가야 할 길만이 햇살을 받고 있다. 삶에서 일은 때론 그런 여행을 닮았다. 계속하는 일이 그를 투명하게 만든다. 다른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그가 걷는 발걸음 소리만 남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