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한국과 가장 닮은 나라는 대만이 아닐까 싶다. 요즘 대만 여행을 위해 대만에 대한 공부를 해보는데, 놀랍도록 비슷한 면이 있다. 합계출산율은 나란히 0.7명대와 0.8명대를 기록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1, 2위 랭킹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청년층의 절망'이 눈에 띈다.
서울과 타이베이는 모두 전 세계에서 소득 대비 주택 가격(PIR)도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청년들의 소득으로 적절한 주택을 얻어 아이 둘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꿈' 자체를 꿀 수 없는 나라다. 대부분의 주택은 기성세대가 보유하고 있는데, 그 가격을 끊임없이 올리기 때문에, 정체되는 소득에 비하여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멀어져가는 신기루처럼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 대만은 '빈 집' 비율이 높아도 주택의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 기현상을 보인다. 한국과 대만 모두 '부동산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집이건 상가건 그냥 비워둘지언정, 싸게 거래되게 두지 않는다. '어차피 결국 다 집은 사야하잖아. 이 불안한 세상에서 자기 집 없이 살 사람이 어디 있어.' 이 믿음 하나로 부동산 불패 신화가 형성된다. 이 부동산 불패 신화와 자산 편중은 청년의 주거 절망과 출산 포기 현상을 가속화하며, 이는 생산가능인구 급감과 사회 기반 약화로 이어진다.
세상 모든 것은 순환하며 새로운 것들에 자리를 내주어야 하지만, 100세 시대에 작은 나라, 작은 땅덩어리에서의 '땅'은 순환되지 않는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남는다. 가령, 좁아터진 나라에서 젊은층 직장의 대부분이 수도에 몰려 있는데, 수도의 주택 대부분을 A가 보유하고 있다고 해보자. 청년들은 A가 죽을 때까지 그가 부르는 값의 월세를 내며 살아야 한다. 아니면 그가 제시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의 집들을 어마어마한 부채를 끌어안으며 사야 한다.
어느 쪽이든, 그러다 보니 청년층의 소비 여력은 급격히 감소하고, 미래를 꿈꾸는 저축 행위나 '식구'를 늘리려는 계획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자녀 1명을 대학까지 양육하는 데는 3억~5억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이 평생 몇 억을 모으지 못해 노후 빈곤에 시달리는 걸 생각하면, 자녀 하나 키우는 건 생존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사교육과 양육비 문제는 대만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좁은 나라에서 서로 경쟁하며 사교육비를 퍼붓는 일도 한계에 다다랐다.
한국과 대만은 어찌보면 모두 전쟁 이후의 '백지'에서 시작하여, 근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생존과 성장을 이룬 국가다.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고, 엄청난 도시화와 함께 민주주의도 이룩했다. 그러나 '생존과 경쟁, 성장'이 너무 중시된 나머지, 사상누각처럼 쌓아올린 나라의 붕괴를 조만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청년의 절망과 아이들의 소멸에 있다.
그러나 청년과 아이가 완전히 사라없어질 때가 되어도, 빈집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어도, 부동산은 불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세상이 텅 비어버릴지라도, '땅에 대한 믿음'은 허공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좁은 땅에서 더 줄어든 인구가 더 좁은 수도권으로만 몰리면서, 이 마지막 성채가 신화처럼 빛이 날 것이다. 그 빛은 눈이 멀어버리고 살갗을 태워버릴 정도로 밝아서, 정말이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