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나의 책들은 1년 안에 모두 잊힐 거라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지혜와 감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쓴 책 중에서 <그럼에도 육아> 만큼은 몇 년 더 읽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약간의 기대를 해본다. 그 이유는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육아에 관하여, 이 책처럼 쓴 경우를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쓴 대부분의 책들은 대체 가능할 수 있다. 인문학 이야기든, 사회 이야기든, 글쓰기 이야기든 세상에 내가 쓴 것보다 더 깊고 값진 이야기도 많다. 그러나 내 독서 이력을 통틀어 보더라도, 육아 시절의 이야기를 일종의 낭만적 정서로 접근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도 딱히 의도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시작된 육아에 청년 시절 갖고 있던 정서가 나도 모르게 덧씌워진 게 아닌가 한다.
내가 만약 내 또래들처럼 몇 년 뒤에 육아를 시작했거나, 다른 상황에서 좀 더 준비되고 갖추어진 육아를 했더라면, 아마 꽤나 다른 기록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도래해버렸던 어느 여름 날의 육아, 내 삶에서 어쩌면 가장 풍파도 많았고 변동도 심했던 날들 가운데 있었던 아이, 안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던 바람같은 나날들을 거쳐오는 가운데 의지했던 사랑이라는 감정, 같은 것들이 나름 독특한 육아 에세이를 남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내가 쓴 20여권의 책 중에서, 유일하게 읽으면서 '울었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책이다. 첫 페이지부터 그냥 엉엉 울면서 읽었다는 분들도 많았다. 사실, 나도 가끔 북토크에서 이 책을 낭독하다 보면, 울컥 할 때가 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 시절에는 왜 그리도 애틋한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삶에서 가장 불안한 시절에, 가장 단단해야 했던 그 마음의 분열이, 내 마음에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결혼은 했는데, 돈은 없었고, 직장도 없었다. 아직 나는 서른의 청년이었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몰랐다. 믿는 건 사랑 하나 뿐이었는데, 사실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육아 정서'였다고 하긴 어렵다. 다들 적어도 여러 조건을 따져서 결혼을 하고, 그 뒤에도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며 고민과 계획을 거쳐서 육아라는 걸 시작한다. 사실, 나도 그러는 게 맞았겠지만, 뭐랄까, 서툴고 어설펐던 청춘이었던 지라 깊은 고민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주변 아빠들 중 거의 가장 어리다. 돈이나 현실 보다는, 인생에서의 예감이나 꿈 같은 거나 믿던 시절에 아빠가 되었으니, 그 시절의 묘한 감성이 당시의 글들에 남아 있지 않나 싶다.
내가 육아 이야기들을 그렇게 간절하게 남겼던 건, 한편으로는, 읽거나 볼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도 있다. 청년 시절, 애정 이야기야 평생 다 봐도 못 볼 만큼의 이야기가 세상에 쌓여 있다. 로맨스 영화, 만화, 소설 등 거의 끝도 없다. 그러나 매일 내가 아이와 함께하며 느꼈던 그 감정을 절절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작품은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영화 <어바웃타임> 정도가 비슷했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읽기 위해서라도 나의 글을 써야했다. 육아를, 내 삶에 도래한 이 아이를, 이 사랑을 필사적으로 긍정하기, 라는 게 그렇게 이루어졌다.
아무튼, 그 시절 그렇게 남겨놓았던 이야기 덕분에 올해 봄도 바빠졌다. 작년에도 전국으로 육아 이야기 하러 다녔는데, 올해도 서울 곳곳에 육아 이야기를 하러 다니고 있다. 아이도 초등학교 들어가고, 그 '유아기 육아'라는 것도 거의 끝나가서 그런지, 그 시절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마지막까지, 이 그리움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