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도 마음을 다바쳐 나의 시간을 살았던 것 같다. 아내를 만났던 10년 전의 겨울로부터, 나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나는 아내가 살던 오피스텔을 찾아가 이것저것 뚝딱뚝딱 고쳐주는 것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매번 물을 퍼다나르는 보일러에 호스를 달아주고, 커튼을 고쳐주고, 혼자 사는 걸 무서워하는 아내를 위해 문에 걸쇠를 달아주었다. 아내는 직장인이었고, 나는 백수였는데, 아내를 위해 그렇게 무언가를 하나씩 하는 게, 묘하게도 나의 불안을 달래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수험생활을 하고, 장거리 부부 생활을 하고, 간신히 서울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아이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지금의 조금 넓은 집에 이사오기까지, 그 세월을 온통 어떻게 건너왔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은 그냥 젊음의 힘이었을까? 나는 다른 누구와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 애썼다. 내게는 그저 나의 시간이 있을 뿐이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사실, 남들과 비교하기 바빴다면,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대신, 내가 믿었던 건 그냥 오늘에 충실하는 마음과, 내 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마치 연애 시절,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는 마음들을 잊고자, 아내의 집을 고쳐주고, 아내에게 요리를 해주고, 아내와 손을 잡고 한참 걸었던 것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고, 바다에 뛰어들고, 함께 욕조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구체적인 감각의 나날들, 내 손 끝에 살아있던 그 모든 날들이 나를 나의 시간에 속해 있게 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돈벌이라든지, 늦게 모으기 시작한 자산, 여전히도 그저 나의 걸음이나 걷고 있는 이 시간을 지키게 하는 건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내게는 딱히 비교 대상도, 경쟁 상대도 없다. 대신 나는 가능한 한 나의 시간에 속해 있고자 애쓴다. 내가 쓸 수 있는 글들을 쓰고, 내가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나는 나의 시간, 우리의 시간 안에 있을 뿐이다. 나는 평생 그렇게 나의 시간을 믿으며, 초조와 불안, 비교와 싸워왔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언제나 더 적절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칼같이 잘 졸업해서, 일찍 취업하고, 적절한 시기에 아파트도 잘 살고, 모든 걸 잘 갖춘 채로 결혼도 하고 육아도 하며, 세상의 시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이 내 주위에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인지 늘 그들과 동떨어진 나의 섬 같은 시간에 있었다. 대학도 늦게 졸업하고, 대학원은 수료만 하고 나온 채로, 몇 년간의 백수 생활을 하고, 뒤늦은 수험 생활 이후 첫 신입사원이 되었을 땐 삼십대 중반이었다.
이제 마흔이 되었지만, 역시 보통의 마흔이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응당 내가 살아온 시간의 순서에 맞는 어느 시침 정도에 와있으리라 생각할 뿐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최대한 가까운 시간 안에서, 그들의 손을 잡고, 그저 그렇게 나아가는 데 마음을 둔다. 내가 따르는 것은 내 마음의 길이고, 그 마음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흐름이다. 그렇게 살아버린 인생을 마흔에 와서 바꾸기도 어렵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내가 나의 삶에서 써낼 수 있는 글들을 더 써낼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곁에 있을 때,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기나긴 여행들을 더 할 것이다. 아이가 떠날 때쯤이 되면, 아내랑 오랜 꿈들을 또 다시 거닐 것이다. 나는 그런 나의 시간 속에 살려고, 아마 계속 글을 쓰며, 역시 내 손 끝에 닿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시간에 머무르려고, 세상의 시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펜을 잡고, 요리를 하고, 물과 모래와 바람을 만지고 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