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동생이 연락이 와서 내게 판사 시험에 응시하라고 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판사라는 직업 자체를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그 말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을 아내에게 꺼냈다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가 갑자기 여동생과 함께 시험에 응시하라고 했고, 이후에는 장인어른, 장모님, 어머니, 아버지까지 온 집안 식구들이 나보고 판사가 되라고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판사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애초에 재판연구원 등 오래 전부터 판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해주었지만, 이미 나의 항변은 아무 소용이 없는 듯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나의 가족들은 나를 '정 판사'라고 부르며, 판사 시험으로 몰아넣었고, 나는 어느덧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기분으로 사법연수원 앞에 서있게 되었다. 아니, 판사라니, 나는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같은 걸 쓴 사람이라고,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나, 어쨌든 시험까지 치고 나오게 되었다.
시험을 치고 나온 뒤로, 나에게는 상당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시험은 치긴 쳤는데, 혹시라도 합격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준비할 게 한 둘이 아닌 서류전형에, 인성평가, 엄청난 고난이도라고 하는 여러 번의 면접 등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 이번 봄에 내가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거의 한 주도 빠짐 없이 마감과 강의로 가득 차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판사가 된다면? 지방에 발령나면? 다같이 이사간다고? 그 모든 것이 폭풍처럼 휩쓸고 올 것이 두려워, 가끔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 시험 발표일이 되었다. 발표난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나에게 발표 명단을 보내주었다. 초조하게 번호를 찾아보는데, 명단에는 나의 수험 번호가 없었다! 그 순간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드디어 올해, 내가 계획한 것들만을 안심하고 해나갈 수 있다. 아내는 실망하고, 장모님은 괜찮다고 위로하고, 부모님도 아쉬워한 눈치였다. 심지어 아내는 나에게 시험을 일부러 망치고 온 거 아니냐며 의심했다. 하지만 그렇진 않았다. 나름대로 적어도 시험장에 가서는 열심히 쓰고 나왔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시험 공부도 사흘 정도는 했다. 이것은 나랑 인연이 아니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사실, 내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판사 시험을 치러간 건, 여동생과 가족들의 말을 잘 들으려는 마음에서였다. 애초에 로스쿨에 간 것도, 첫 직장과 두 번째 직장을 택한 것도 모두 여동생의 권유가 있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봤을 때,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의 권유를 따르는 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가정의 평화가 최우선이고, 가족의 염원에 정면으로 '역행'하면서까지 무언가를 하고자하는 인간이 아니다. 대체로 가족들이 하라고 하면 적어도 시도는 해보게 된다. 나중에 도로 걸어나오거나, 방향을 틀지라도, 일단은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내게 원하는 것을 해보려는 마음이 있다.
만약 처음부터 '판사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모두가 원할지라도 나는 절대 안 한다.'라고 하며 시험조차 치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계속 찝찝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해봤지만,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라는 쪽이 역시 좋다. 이것은 아무래도 내가 주위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다. 주위에서 해보라는 것들을 시늉이라도 해보거나, 시도라고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어쩔 수 없다면 역시 주위에서도 단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러다 보면 내가 점점 더 좋아하는 삶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왜 일까? 내가 딱히 계략을 부린 건 아니다. 나는 분명 그들이 원하는 걸 했다. 다만, 내 운명이 아닌 걸 난들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