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Jun 08. 2022

모든 것은 디테일에 있다

Photo by Sumner Mahaffey on Unsplash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라는 말은 원래 "신은 디테일에 있다." 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건축에서도 세부적인 부분들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내가 느끼는 것 또한 비슷하다. 사실, 모든 것은 디테일에 있다. 삶도, 천국도, 글쓰기도, 관계도 오직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에 예민한 사람은 확실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다양하고 풍부한 삶을 산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밥 먹고 출퇴근했지.'라고 밖에 되새길 수 없는 사람과, 출근길의 하늘과 사랑하는 사람의 제스처와 저녁에 마주한 생각들의 디테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 후자의 사람에게 삶은 훨씬 잘게 쪼개져 있고, 감각들이 세분화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세계와 순간들이 디테일하게 인식되고 기억된다. 

그런데 단지 삶이 잘게 쪼개지며, 그에 따라 삶 자체가 풍성해진다는 말로는 어딘지 부족하다. 나아가 이런 '디테일에 대한 태도'는 삶 자체를 보다 기분 좋은 것으로, 관계를 보다 섬세하게 지탱 가능한 것으로 바꾼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디테일에 있다. 무언가를 정확하고 풍요롭게 누린다는 것은 알고보면 디테일을 누린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카페에 앉아, 그저 앞사람과 실컷 수다를 떨다가, 수다거리가 떨어지면 권태로워져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디테일을 누릴 줄 알면, 카페에 흐르는 음악의 가사들이 들리고, 사람들의 풍경이 보이며, 카페의 인테리어와 내가 속한 공간 전체를 누릴 수 있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된다. 그저 디테일들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 그는 한결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관계가 권태로워지고, 지긋지긋한 것이 되며, 어느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 디테일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제 하루도, 오늘 하루도 사소한 디테일로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누릴 수 있었다. 놓치고 지나갈 수 있었던 시간들에 관하여, 당신과 우리를 위한 것들을 발굴하고, 작은 선물을 고민하며,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을 붙잡는 일에서 멀어지면서 관계는 와해된다. 반대로, 디테일을 몇 번 더 챙길 때마다 관계의 중력감은 놀라울 만큼 강해진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문득 "천국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행복에 관해 고민하다가 아이를 떠올리면서였다. 아이는 어른보다 몇십배 몇백배 더 디테일에 민감하다. 우리가 그저 지나치는 거실과 화장실 바닥에서, 쇼파에서, 책상에서 무수한 디테일들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가진다. 아이에게 세상은 디테일의 천국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글 또한 그런 잠깐의 생각을 디테일하게 풀어보는 것으로 쓰였다. 글쓰기란 최초에 떠오른 어떤 감정, 생각, 마음, 발상을 디테일하게 풀어내는 것 그 자체와 다르지 않다. 사실, 알고보면 모든 것이 디테일이며, 오직 디테일로 실현되며, 디테일의 풍요로움이 삶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정확한 말도 별로 없는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수 시절을 잘 보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