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정지우 Jun 22. 2022

감정을 아는 것의 중요성

Photo by Tengyart on Unsplash


요즘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알려고 애쓴다. 감정만 정확히 알아도, 대부분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아서다. 사실, 인생의 문제라는 것들은 늘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은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는 불안하고, 분노하고, 모욕감을 느끼거나 괴로워하지만,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 전자의 사람에게는 인생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후자의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감정을 알아야 한다. 

가령, 직장에서 상사한테 혼나는 경우가 있다고 해보자. 누군가는 분노를 느끼고, 누군가는 위축되고, 누군가는 불안을 느낀다. 그러면 그 감정들을 하나씩 분석해보면 된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상대가 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내가 정당하다는 확신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다. 나는 정당하므로 부당한 상대방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상대방이 이상한 인간일 뿐이다. 아마 직장 밖 동네에서는 기껏해야 술 먹고 행패부리는 아저씨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마음 상할 필요 없다. 

만약 위축된다면,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혼남은 곧 성장의 기회다. 혼남이 없었다면 결코 마주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성장도 하지 못했을 테지만, 상사 덕분에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고마워할 수도 있다.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어떤 사실, 사건, 현실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알고, 그 감정이 왜 발생했는지를 추적하면, 인생에 매우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불안을 느낀다면, 내가 무언가를 겁내고 있다는 뜻이다. 가령, 회사에서의 소외, 해고, 배제됨, 승진 누락 같은 것들을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땐 그런 두려움이 진짜 현실의 두려움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즉, 정말 도래할 현실인지, 임박한 현실인지, 피할 수 없는 현실인지, 교정할 수 없는 현실인지, 나아가 정말 마주해서는 안되는 현실인지 용기를 갖고 성찰해야 한다. 대개는 내가 상황을 과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마음 속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막을 수 없을 때 불안이 똬리를 튼다. 

이처럼 감정은 항상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른다고 한다. 지금 기분이 어때? 오늘 기분이 어땠어? 라는 질문에 쉽사리 정확한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그냥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늘의 감정, 어제의 감정, 지난 주말의 감정에 관해 정확히 알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드물고, 감정을 모르면, 자기 안의 두려움도, 자기가 옳은지 그른지도, 자기가 성장할 기회인지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감정을 알아야, 자기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갈 때 중요한 것 하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인 것 같다. 나 친구랑 싸워서 불안해(영원히 혼자가 될까봐), 나 일을 망쳐서 너무 위축돼(내 실력이 형편없는 것 같아서), 나 거래처 사람 때문에 너무 화가 나(그 사람이 너무 부당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을 이해하고 나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감정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인생에서 결정적일 정도로 중요하다고 느낀다. 감정은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표지이고,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 표지를 새겨넣을 수 있는 표지판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를 위해 울어주는 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