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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ug 01. 2022

가진 돈이 적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

Photo by Jason Leung on Unsplash



남들보다 돈이 적다는 건 그리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가진 돈이 적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워야 할' 일이 된 것 같다. 외제차 타는 사람 앞에서는 구형 국산차를 타는 것이 부끄럽다. 명품백을 맨 사람 앞에서는 그보다 못한 가방을 가진 자신이 부끄럽다. 강남에 사는 사람 앞에서는 강북에 사는 것이 부끄럽다.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 앞에서는 몇천만원 버는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이런 부끄러움이 과연 정당한 부끄러움인지, 정말로 수치심을 느껴야 할 만한 일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가령, 내가 남들보다 덜 가진 부모를 만나 덜 가진 사람으로 사는 것이 부끄러워할 일인가? 그것이 수치스러워야 할 일인가? 그것은 내가 불성실하거나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뜻도 될 수 없고, 못나거나 불행한 사람도, 나쁘거나 잘못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될 수 없다. 그냥 덜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그런 경우에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든다면, 그것은 '돈'의 많음을 일종의 옳음, 정의, 양심의 차원에 놓아두고 있다는 뜻이다. 돈이 없는 자는 죄책감, 수치심, 좌절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가난하거나 돈이 없는 사람 뿐만 아니라, 그냥 눈 앞에 있는 사람보다 돈이 '적기'만 해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사회와 문화가 전방위적으로 돈 많음을 추앙하면서 그것이 가장 옳은 것이자 정당한 것이고 찬양하며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속삭이며 전사회적인 무의식을 장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감정'이다. 감정은 늘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측면에서의 부끄러움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가령, 충분한 지식이나 지혜를 갖지 못한 것, 타인이나 사회를 위해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 것,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시하며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것, 자기만의 고유한 취향이나 행복에 관해 모르는 것, 자기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존재들에 관한 사랑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 오랫동안 꾸준히 자신의 일이나 주변 세계에 헌신하지 않는 것, 이런 전통적인 '수치심'의 대상은 오로지 '돈' 앞에서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고 있다. 그 모든 것은 '돈 많음' 앞에서는 정신 승리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에는 돈 많은 자가 승자이고, 돈 많은 게 승리한 인생이다. 


인생에는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 이하로 적으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돈은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그래서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제는 인생의 수단이어야 할 돈이 수단 이상의 존재로서 가치를 지니면서, 인생의 감정과 의미 자체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남들보다 돈이 적으면 우리는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데, 이 수치심은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돈을 벌더라도 결국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강남에 살아도 핵심 지역은 따로 있고, 외제차를 사더라도 상위 클래스는 또 따로 있다. 


돈이 너무도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 삶은 돈과 너무 깊이 착종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사슬을 어느 순간에는 끊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낀다. 어느 순간에는, 돈이 행복이나 감정을 결정하게 두어서는 안되고, 그저 돈과 내 삶 사이의 끈을 내려쳐 끊어버려야 한다. 나의 행복은 소비에서만 오는 것만도 아니고, 나의 자긍심이나 수치심도 돈에서 오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보다 더 고유한 내 삶의 감정을 알고 싶고, 그렇게 돈의 감정이 아닌 나의 감정을 소유한 나로 살고 싶다. 나는 그것이 보다 좋은 삶을 사는 핵심적인 기술이라고 믿고 있기도 하다. 돈이 나의 존재와 감정이 될 수 없는 어떤 울타리를 만드는 기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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