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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예 Apr 06. 2021

수영과 다시 마주보다

 나는 운동으로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답답할 때에도 죽도나 라켓을 휘두르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를 짓누르는 문제들은 보통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었는데, 운동 동아리 사람들과 몸을 움직이고 한바탕 땀을 내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 때문에 생긴 문제를 사람으로 풀다니. 아이러니 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운동은 나라는 집을 받들고 있는 주춧돌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좀 색다른 운동이 없을까 고민하던 2년 전 여름, 카트를 끌면서 마트를 돌아다니던 중 수영복 코너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중학생 때를 마지막으로 우리집 장롱 속에서 나오지 못 하던 수영복이 순간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린 채 발걸음을 서두르며 다른 코너로 눈을 돌렸다. 


 나에게 수영은 그다지 자신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어쩌면 의욕이 생기지 않는 운동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2년전부터 안경을 써 온 초등학교 3학년은 안경없이 마주한 수영장이 너무 싫었다. 모든 게 다 뿌옇고 흐릿하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꾸깃꾸깃 인상을 써야 보이는 선생님의 얼굴, 강사들의 우렁찬 목소리, 팔다리들과 물이 만들어내는 소리, 코끝에서 아른거리는 락스 냄새까지. 모든 게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선생님의 모습을 쫓느라 수영에서 웃음이나 재미는 별로 느끼지 못했다. 수영장 가는 날은 몸에 힘을 잔뜩 넣고 하루종일 애를 써야 하는 날이었다.


 그 긴장감이 남긴 기억 때문에 수영장도, 수영복도 다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유난히 뜨거웠던 그 해 여름은 락스 냄새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고민만 하다가 영영 헤엄 하나 제대로 못 치는 어른이 되는 게 두렵기도 했다. 결국 나는 마트에서 수영복을 새로 장만했다.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산 수영복이었다. 그리고 안경원에서 수경을 하나 맞췄다. 도수가 들어간 수경은 안경만큼 편안하게 시야를 확보해주진 못하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앞이 잘 보이고 제대로 헤엄치는 법을 익히니 이제는 승부욕까지 생겼다. 준비운동 후에 물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늘 새롭다. 오늘따라 물살을 가르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날이 있는가 하면, 수업이 다 끝나고도 쌩쌩해서 레인을 한 바퀴 더 돌고 오는 날도 있다. 앞으로 나아갈 때는 숨을 아꼈다가 물을 끌어모은 손이 물 밖으로 나올 때, 폐 속에 다시 공기를 가득 채운다. 그렇게 세차게 나아가 반대편 레인에 손이 닿으면 기분 좋은 달성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수영장에서 긴장 밖에 못 느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가겠다는 도전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다.


 만약 2년 전 여름에 수영을 다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어릴 때의 기억 속에서 도전을 미루기만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만을 맹신하느라 못 시작한 일이 또 있진 않았는지 살펴봐야지. 그 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직접 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고, 실패하면 툭툭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수영을 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 고개를 숙이고 콩콩 뛰어버리면 끝나는 것처럼.


 마스크 없이 밖을 나설 수 있는 어느 날,
땀방울이 맺히는 여름이 돌아오면
수경과 수영복을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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