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지독한 숙취?
술을 좋아한다. 술에 취하면 흥이 오르는데 그 흥에 힘입어 더 마시고 그렇게 더 취하고 더 흥이 오르고 더더 마시고... 결국 자제력을 잃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을 훌쩍 넘기고야 만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마시지만 내일은 반드시 찾아오고 오늘이 된 그 내일은 종일 숙취로 고생하기 마련이다. 어지럽고 머리 아프고 속 메스껍고 눈이 터질 것 같고 얼굴에 열이 오르고 콧물이 흐르며 바닥이 일어서고 하늘이 크게 회전하며 사물이 두 겹으로 보이며 추운데 덥고 더운데 추우며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일어설 수도 없고 뭘 먹지도 뭘 안 먹지도 못하는 괴로운 상태. 거기에 전날 술 먹고 저지른 과오가 하나둘 떠오르면 그냥 홀연히 세상을 등지고 산에 들어가고 싶은 거다. 하지만 속세와의 연을 끊을 만한 용기는 없어서 차라리 술을 끊겠다고 다짐하지만, 금주 결심을 할 때마다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처럼, "개가 똥을 끊지."
고산병은 숙취와 매우 흡사한 증세를 가져온다. 해발 4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에 갈 일이 있는데 고산병을 미리 체감하고 싶다면 과음하면 된다. 물론 고산병을 미리 체감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고, 그 방법이 과음인 것은 더욱 어리석다. 아무튼 내가 느꼈던 고산병은 지독한 숙취 같았다.
고산병은 무방비 상태일 때에 찾아왔다.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로 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아침 7시 버스를 타자마자 버스에 준 간식을 먹고 잠들었는데, 깨어난 순간부터 몸이 안 좋았다. 먹자마자 잠들어서 체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바깥의 무더운 날씨와 마치 냉동고 같았던 버스 안의 온도차로 인한 냉방병인가 싶기도 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속이 거북했다. 국경에서 출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순간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빙글빙글. 오후 4시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좌석에 반쯤 드러누워, 그야말로 끙끙 앓았다.
고산병은 볼리비아로 넘어가서 우유니에 갈 때쯤 올 거라고 막연히 예상했었는데 아니었다.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도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였고 내 몸에 타격을 주기에 충분했던 거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증세가 호전되긴 했지만,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날 부랴부랴 찾아간 곳은 약국. 고산병 예방약을 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 날은 하필 토요일이었고, 난 월요일에 우유니 투어를 떠날 예정이었다.
결국 약은 포기하고 민간요법에 의존하기로 했다. 코카잎과 코카 캔디를 잔뜩 샀다. 코카잎을 질겅질겅 씹고 있으면 고산병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내내 코카잎을 입에 달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유니 투어의 첫날 4,965미터의 고도를 거쳤고, 그날 밤새 앓았다. 저녁도 못 먹고 일찍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갔는데, 옷을 몇 겹 껴 입고 핫팩을 끌어안고 두꺼운 이불을 덮었는데도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했다. 길고 힘든 밤이었다. 반죽음 상태에서 아침을 기다리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온몸이 다 아팠다. 살도 아프고 뼈도 아팠다. 그렇게까지 아파본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투어 내내 아팠다면 그만큼 끔찍한 게 또 없겠지만, 둘째 날은 다행히 견딜만한 수준까지 완화되었다. 고산병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투어 여행자들에게도 찾아갔다. 약과 코카잎을 나누며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가히 인도적이었다. 병자들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고산병의 저주를 피해 간 행운아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우유니 투어는 멋졌다. 2박 3일 동안 만난 모든 풍경이 그냥 스쳐보내기에 아까울 만큼 경이로웠다. 하지만 고산병을 생각한다면, 내겐 한 번이면 충분. (사실 숙취도 한 번이면 충분한데 왜 난 결심을 번복하고 고통을 반복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