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11. 2006년 7월

어떤 작품이 주는 충격

by 지예강

놀랍게도 미술관에서 갑작스럽게 정신적인 불안정감이나 신체적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1820년대부터 보고돼 오고 있으며 그 증상도 다양하다. 갑작스러운 울음, 구토, 발열, 호흡곤란, 심한 떨림...... 심지어 환각을 경험하거나 괴성을 지르고 기절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문요한 『여행하는 인간 Homo Viator』



여행지에서 꼭 가보는 곳 중 하나가 미술관이다. 대개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고 지루하다 못해 피곤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내가 방문한 지역의 미술관은 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100개의 작품을 무심히 지나다가도 그다음에 만난 작품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충격이라는 게, 중독성이 강하다.


학창 시절 성적이 꽤 좋은 편이었다. 다만 책상머리 앞에서 교과서를 파는 공부만 잘했을 뿐, 예체능 쪽은 젬병이었다.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이고 그다음이 미술이었다. 몸 쓰는 걸 제일로 못했고 손으로 뭘 만들어내는 걸 그다음으로 못했다. 실기는 당연히 엉망이었는데, 그걸 이유로 그 과목 자체를 싫어하게 되어서 필기도 놓아버렸다. 미술은 사람을 그리면 인물화요, 풍경을 그리면 풍경화고, 사람도 풍경도 아닌 걸 그리면 추상화인가 보다 하고 살았다. 추상화라도 이게 칸딘스키냐 몬드리안이냐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내가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이 미술관을 꼭 여행 중 To do list에 넣는 건, 아까도 말했듯이 어떤 작품들에서 받게 되는 기묘한 충격 때문이다. 그걸 처음으로 느낀 게 내가 처음으로 여권을 발급받고 떠났던 첫 여행지, 유럽에서였다. 정확히는 오스트리아.


가져갔던 여행책자에 손톱만 하게 실려 있던 그림이 하나 있었다. 예술가가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었는데, 그 그림이 궁금해 레오폴드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의 1층과 지하 2개 층을 둘러봤는데, 책자에 실린 그 그림의 실물이 그곳에 있었다. 아니 그 그림뿐만 아니라 그 예술가의 회화작품이 꽤 많았다. 에곤 실레.

길거리에서 찍은 것일텐데(화질거지), 여행책자에서 날 유혹하던 바로 그 작품.


여성의 몸을 노골적이고 퇴폐적으로 그린 작품이 많았지만, 풍경화와 자화상도 많았다. 거친 붓질과 두껍게 발린 물감, 바랜 듯한 색감. 여행책자나 교과서, 도록이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생경한 감동과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고, 작품 하나하나를 눈으로 탐닉했다. 세상에. 이래서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거구나. 이렇게나 매력적이구나.


레오폴드 미술관엔 피카소와 케테 콜비츠의 작품도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이 현대문학사 수업 시간에 이 두 예술가의 작품을 소개했던 것을 기억했다. <게르니카>와 <전쟁은 이제 그만>을 나란히 프로젝트 화면에 띄워놓고, 예술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을 위했던 피카소와 그럴 형편이 못 되었던 다수 민중을 위했던 케테 콜비츠를 비교했었지. 물론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해당 작품을 본 건 아니었지만, (그중 하나는 10년이 지난 뒤에 스페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알고 보면 더 재밌을 수도 있는 게 예술 작품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 후에 학교로 돌아가서는 도서관에서 예술서적을 잔뜩 빌려다가 읽었었지. 도서관에서 소설 말고 다른 책을 대여한 것도 그즈음이 처음이었을 거다.



탐을 내다 탐닉하게 되고, 탐닉하다 탐구하게 되고, 탐구하다 탐험하게 된다.


김소연 『한 글자 사전』


그때 샀던 에곤 실레 도록이 여전히 책꽂이에 꽂혀 있다. 독일어로 쓰여 있어서 글은 못 읽고 가끔 그림만 보다가, 어느 순간 에곤 실레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서 지금은 장식용이다. 그래도 나름의 의리를 지킨다고 영화 <에곤 실레>가 개봉하자마자 상영관으로 달려갔지만, 주인공이 참 잘생겼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감흥이.


아무튼 그런 이유로 여행 중에 그 지역의 미술관을 들리는 게 불문율이 되었는데, 간혹 작품 앞에서 겪는 기이한 느낌 때문이다. 전율이나 감동보다 강도가 센데, 이를테면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라고나 할까. 내가 작품 앞에 오롯이 서는 그 순간, 작품 안에 내재되어 있던 묵직한 힘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거다. 그 힘을 온전히 느끼는 데에서 오는 환희, 그와 동시에 그 힘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님을 자각하는 절망. 영원할 거라는 환희와 찰나에 불과하다는 절망이 공존하며 내 몸과 마음에 주는 충격. 그때는 손에 힘이 풀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숨이 턱 막혀 온다. 몸 어딘가가 가려운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을 계속 마주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눈을 굴리고 깜빡이고 오래 감았다가 다시 뜬다. 가장 심하게 체감한 곳은 스페인 톨레도에서 엘 그레코를 만났을 때다. 그 감동을 어떻게 글로 전하리.



20140204_124821.jpg 톨레도 대성당의 sacristia에서 엘 그레코에게 영혼을 내줄 뻔했다
20140204_135723.jpg 돈 키호테 보다 엘 그리코


조금 다르지만, 어떤 자연 풍경이나 건축물도 온몸을 짓누를 정도의 경외감과 위압감을 준다. 두렵기도 하지만, 축복을 받은 것 같은 벅찬 기쁨도 함께 느끼는 거다. 난 신을 믿지 않지만, 그럴 땐 신에게 감사하게 된다. 여행이 내게 매혹적인 가장 큰 이유다.



내게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기도를 하는 것은 알고 있지.

미겔 데 우나무노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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