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12. 2009년 12월

폐허를 걷는 긴 발바닥

by 지예강

하나
집을 떠나라.

혼자 가라.

가볍게 여행하라.

지도를 가져가라.
다섯
육로로 가라.
여섯
국경을 걸어서 넘어라.
일곱
일기를 써라.
여덟
지금 있는 곳과 아무 관계가 없는 소설을 읽어라.
아홉
굳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야 한다면 되도록 사용하지 마라.

친구를 사귀어라.

폴 서루 『여행자의 책』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에서 폴 서루의 전언 중 '여덟' 빼고는 다 했다. 열을 모두 채운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방콕에서 씨엠립까지는 가는 길은 수월했다. 인도에서 만난 친구가 방콕에 사는 친구를 소개해 주고, 방콕에 사는 친구가 태국 국경도시인 아란에 사는 친구를 소개해 주고, 아란에 사는 친구가 지역 여행사에서 일하는 지인을 소개해 준 거다. 그들이 얼마나 친절했냐면, 방콕에서 만난 친구는 새벽 5시에 내가 머물던 숙소로 찾아와서 아란까지 가는 카지노 버스에 탑승할 때까지 날 배웅해 줬다. 그리고 버스기사님께 나의 목적지를 일러둔 거다. 꼬박 4시간을 달려 아란에 다다랐을 무렵, 어느 주유소 앞에서 갑자기 버스가 서고 기사님이 날 더러(나만) 내리라고 해서 당황했다. 내리라니까 내렸는데, 그 주유소 앞에 서 있던 아란 친구. (알고 보니 그 주유소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아란 친구의 부모님을 통해 여행사 직원 분을 소개받았고, 난 어느새 그분 오토바이 뒷자리에 실려 국경까지 다다랐다. 출입국 수속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나니 이미 캄보디아. 캄보디아 국경도시의 포이펫에서 씨엠립까지는 거기서 만난 스웨덴 친구 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렸다. 씨엠립에서는 뚝뚝을 타고 시내로 이동했고, 뚝뚝 운전사가 추천해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다. 처음에는 장삿속 아닌가 싶었는데, 게스트하우스가 너무 마음에 드는 거다. 그래서 다음 날 앙코르와트 내의 교통편도 그 뚝뚝 운전사 Lim에게 부탁했다. 일사천리였다. (그들 모두에게 복이 있기를.)


이동이 편안하면 본 투 비 뚜벅이로서는 괜히 조바심이 난다.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게 당연하고, 가능하다면 하루 종일 걸어야 제대로 그곳을 정복했다고 느꼈던 때가 있더랬다. 방콕에서 시엠립까지 탈 것(버스-오토바이-택시-뚝뚝)에 의존했으니, 앙코르와트는 내 발에 의존하자 싶었다. 사원 간 거리가 멀 경우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Lim의 뚝뚝에 올라탔지만, 대부분 난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다고 내 발이 걷는 데 최적화되어 있냐면 오히려 반대다. 칼발이라고 불리는, 폭이 좁고 긴 발을 가졌는데, 발가락이 손가락만 하다. 발가락과 발바닥의 살이 부드럽고, 발톱이 얇고 무른 편인 것도 별로다. 그래서 조금만 걷다 보면 생채기가 나고, 조금 더 많이 걷다 보면 발톱이 살갗에서 떨어져 나가고 마는 것이다. 괜히 고지식해서, 한 번 걷기로 마음먹은 거리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발은 더 엉망이 되고, 밤에는 몸살을 앓으며 곯아떨어지기 일쑤.


사진 215.jpg


앙코르와트는 팍스로마나와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 찬란한 문명을 떨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여러 고대 유적지들 중에서 보존과 관리가 잘 되어 보기 좋은 곳도 많지만, 그야말로 '폐허'같은 곳도 있기 마련이다. 폐허를 걸으면, 감회에 젖는다. 억겁의 시간이 무덤처럼 남은 그곳에서 공허함과 무상함에 절로 탄식을 하다보면, ...신발이 망가진다.


사진 230.jpg


별 수 없이 맨발로 다녔다. 바이욘 사원 앞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려니, 망태기에 조악한 기념품을 가득 담은 꼬마 아이들이 나타나 날 둘러쌌다. 내가 신발이 없는 것을 알자(신발을 버리진 않고 손에 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우르르 사라지더니 한참 나타나지 않는 거다. 딱히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던 덕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가져온 신발들을 내 발 밑에 진열해 놓는 아이들. 디자인이고 뭐고 일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걸 찾아서 100바트에 구매했다.


아이들은 떠나고 새 신을 신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내 헌 신발을 달라고 하더라. 인도,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에서 수명을 다한 나의 신발은 그렇게 타인의 손에 넘겨졌다. 새 생명을 얻은 건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사진 315.jpg


그런데 그때 산 새 신발도 얼마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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