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철학자가 된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가. 신은 있는가. 왜 살아야 하는가 등등. 그 모든 고민에 대한 대답을 허무할 정도로 한없이 가볍게 만드는 이야기. 커트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세이렌」.
토요일인 어제저녁, 내 최대의 고민은 일요일 시간 분배였다. 원래의 계획은 [늦잠 잔다-(오전) 운동 간다-(오후) 친구 만난다]였는데, 토요일에 작업을 다 마무리하지 못한 불상사가 발생했다. 물론 일을 끝마칠 때까지 책상 앞에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면 무슨 문제였겠냐만,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눈이 시큰시큰, 온몸이 욱신욱신. 저녁 9시임에도 일단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워야 했다. 전기장판 위에 몸을 지지자 몸과 마음이 금세 아득히 날아갈 뻔했다. 기절하지 않게 정신을 붙잡고 가만 보자, 마감은 월요일 오전이니 내일 일할 시간을 무조건 빼야 하는데 어떡하나. 솔직히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싶었다. 밖은 춥고 위험한데 왕복 2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며 (직장인은 아니지만) 일요일 저녁 약속은 무리한 감이 있으니까. 막상 나가면 즐겁지만 나가기 전까지 수 천 번을 고뇌하는 내향인의 성정이지만, 먼저 약속 취소도 못 하는 게 내향인의 또 다른 성정이라. 결국 오전 일정인 운동을 포기.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눈곱도 못 뗀 채 터덜터덜 투덜투덜 책상 앞에 앉았다. 어제 끓인 미역국에 밥 말아 훌훌 먹고는 집중력 바닥까지 싹싹 긁어내서 키보드를 와다다닥. 그렇게 얼추 남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정도로 작업물을 마무리해놓고 나니 시간은 12시. 생각보다 빨리 끝냈다! 맘 놓고 일요일 저녁을 즐기면 된다! 이따 맛있는 거 먹을 거니까 점심은 간단히 먹어야지!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봐야겠다! 맛집 검색, 핫플 검색, 날씨 검색!까지 하고 있는데 친구의 카톡. 미안하다. 담에 보자.
김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전에 운동 가고 오후에 일할 걸. 일요일 오후는 센터가 문을 닫기 때문에 운동 아닌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뭐 하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일단 브런치로 왔다. 이렇듯 인생사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고 계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토요일에 일을 끝마치지 못한 것도, 일요일 오전에 밀린 일을 해야 했던 것도, 저녁 약속이 취소된 것도, 브런치에 글을 끼적끼적 끄적이고 있는 것도 모두 누군가의 뜻이라면. 나와 주변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근데 그게 신이 아니고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라는 행성의 외계인이라면.
소설 속 지구에는 엄청나게 엄청난데 말도 안 되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데 알고 보니 그건 지구에서 십오만 광년이나 떨어진 트라팔마도어라는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의 설계이자 각본이었고, 그들이 옷자락조차 스쳐본 적 없는 태양계 생명체들을 제멋대로 이용한 이유는 하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였으며, 그 하던 일이란 트랄팔마도어인이 창조한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계 '샐로'에게 특별히 위임한 일종의 편지 배달이라는 건데, 그 편지는 트라팔마도어에서 또 다른 은하로 전하는 메시지로써 고작 점 하나가 찍혔을 뿐이었고, 트라팔마도어에서 점이란 '안녕'을 의미하며, 그 점을 보낸 트랄팔마도어인은 자신들이 만든 기계들로 인해 이미 멸종했고, 이 모든 일련의 우연 아닌 우연에 희생당한 지구 출신 주인공은 한참 뒤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저 위의 누군가'가 만든 '천국'이 있다고 착각한다는 그런 이야기. 웃긴데 슬프고 허망한데 충만해지는 이상한 이야기.
다 읽고 책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놀란 건 이 소설이 1959년에 출간됐다는 점이다. SF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다큐 아닌가?
옛날 옛적에 트랄파마도어에는 기계와 전혀 다른 생명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구력이 없었다. 그리고 이 가엾은 생명체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하며, 목적 중에는 좀 더 고귀한 목적이 있다는 생각에 집착했다.
이 생명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보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처럼 보이는 것을 찾아낼 때마다, 그 목적이 너무 저열하게 보이는 바람에 역겨움과 수치심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저열한 목적에 따라 사는 대신 이 생명체들은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기계를 만들어내곤 했다. 이로써 그 생명체들은 더 높은 목적에 봉사할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귀한 목적을 발견해도 그 목적 또한 충분히 고귀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리서 비교적 고귀한 목표에 봉사할 기계들이 다시 만들어졌다.
그 기계들은 모든 것을 너무도 전문적으로 해냈기에 결국 생명체들의 가장 고귀한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을 맡게 되었다.
기계들은 대단히 정직하게도 그 생명체들에게는 사실 뭐든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생명체들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목적 없음을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죽이는 일조차 그리 잘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일도 기계에게 맡겼다. 기계들은 "트랄팔마도어"라고 말하는 데 걸리는 것보다도 짧은 시간에 그 일을 끝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