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바바가 떠올라서, 그냥 끄적여보는 단상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과연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크게 소용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보다 더 위대하고 공정한 사람은 존재해야 한다. 그건 틀림없는 진실이다. 우리는 단지 벌할 줄만 알지만, 용서할 수 있는 자도 어디엔가에는 있어야 한다. 진리와 참된 정의는 사랑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카렐 차페크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믿지 않는다. 종교, 물론 없다. 하지만 종교적인 공간은 좋아한다. 대리석을 깔고 높은 기둥을 올리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거대한 성상으로 꾸민 대성당의 웅장함도. 나무로 된 십자가 하나가 단출하게 놓여있는 마을 어귀 교회당의 어둡고 서늘한 공기도. 기꺼이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며 여생을 신에게 의탁하는 고행자의 수도원도. 족히 몇 천년은 될 법한 돌과 나무로 지어진, 그리고 그만큼 나이가 들었을 것만 같은 승려가 꾸려 나가는 오래된 사원도. ...다 좋아한다. 힘들고 피로한 여행 중에 이런 곳에서 얻게 되는 위로와 휴식이 어떤 건지 아니까. 난 종교인은 아니지만, 더 높은 존재를 알고 그 뜻을 좇으려는 종교인들의 슬픔과 기쁨, 신실한 마음을 존중한다.
인도는 삶 자체가 종교적이다. 모든 곳, 모든 것, 모든 때가 신성하다. 신이 아닌 것이 없기에, 그들을 기리기 위한 제의와 축제가 매일 끊이지 않는다. 오늘은 원숭이라면 내일은 코끼리고 다음 날은 팔 10개 달린 사람이고, 뭐 그렇다. 그들이 믿는 것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수레나 가마에 죽은 원숭이나 플라스틱으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성상, 또는 그림이나 사진을 싣고 꽃이나 향으로 꾸민 뒤에 시장을 한 바퀴 돌면 그 뒤로 사람들이 우르르 뒤따른다. 어느새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기도하거나 동전과 지폐를 던지거나 꽃다발을 서로 걸어주거나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것이다.
워낙 유명한 신들이 많지만, 인상 깊은 하나를 꼽으라면 사이 바바다. (원숭이도 코끼리도 아닌) 사람이다. 내가 2009년과 2010년 인도에 있을 때에는 살아 있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2011년도에 사망했단 걸 지금 알았다. 왜 인상 깊냐면 정말 인상 깊을 수밖에 없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곱슬인지 파마인지는 몰라도 거대하게 부풀린 헤어스타일, 발목까지 내려오는 붉은 옷으로 감싼 통자 몸매, 절대 미남이라고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는 두툼한 눈과 코와 입. 첫인상의 충격(너무 힙해서?)이 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으리.
인도의 성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 대부분은 간디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인도 사람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10월 2일은 간디의 탄생일이자 공휴일인데, 그날 내가 본 건 사이 바바의 사진을 실은 경운기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행렬이었기 때문이다. 사이 바바는 환생한 신이자 성인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리고 온갖 기적을 행하고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글쎄, 뭐 그때 생각은 '인도니까.'였다.
'방과 후 학교'를 꾸려나가던 봉사자들 몇몇이 컨퍼런스 겸 워크샵을 명목으로 뿌따 빠르띠(Puttaparthi)로 당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뿌따 빠르띠는 사이 바바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그가 마지막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새벽 버스가 비를 뚫고 두 시간 신나게 달린 뒤 도착. 사이 바바를 기리는 거대한 사원에는 인도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신도들로 인산인해였다.(이틀 뒤가 사이 바바 탄생일이어서 그랬을 수도.) 운이 좋으면 실제 사이 바바를 만날 수도 있댔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아쉽지 않았던 건, 모든 곳에 사이 바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근처의 Old Museum에는 그의 사진과 어록, 조각품, 업적을 정리한 자료들로 빼곡.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배화교와 관련된 전시물도 있었는데 아마 그가 이 모든 종교를 다 포괄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그가 세웠다는 학교(무상 교육)와 병원(무상 진료)도 볼 수 있었다.
그가 진짜 기적을 일으켰는지 아닌지, 신인지 거짓말쟁이인지 그때도 지금도 내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걸 따질 만큼 그에게 관심이 있거나 지식이 있지도 않고. 하지만 오늘 갑자기 사이 바바가 떠올라서, 잠시 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느낀 생각이 있다. 비록 신이 아닐지언정 보통 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한 누군가가 있다면 -민중을 위한 공공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필요한 지역에 건물과 시설을 마련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의지가 되는 가르침을 남겼다면- 그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웬만하면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는 경우가 없었으면 좋겠다. 진짜 신이라면 할 말 없지만, 아니라면 그건 타인에 대한 기만이니까.(자기기만이기도 하고.) 성인이나 지도자, 위인이라는 명함 정도라도 훌륭한데, 왜? 굳이 기적을 행해야 하는 부담감도 없고.
신의 이름을 빌리고 종교의 권위를 가져다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류의 역사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한 것이 종교일 텐데, 그렇기에 인간에게 종교가 가지는 대체 불가능한 어떠한 힘이 있을 텐데, 그 본질과 의미를 변질시키고 퇴색시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 상처 받고 절망하는 건 나약하고 외롭고 슬픈,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