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23. 2009년 7월

인도, 흥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by 지예강

난 그렇게 해서 만족하며 살 수 없을 거예요. 가난하지만 즐겁게 사는 것을 명예로운 삶으로 생각하니까 말입니다. 한마디 더하자면, 재물이 적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고 더 소유하고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에요. 그러나 당신이 하는 말을 더 이상 믿고 싶지 않아요. 나는 시기 질투가 없는 삶을 살고 싶었고 험하고 거친 세상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가며 놀랄 일 없는 꿈을 살고 싶었어요. 모욕에는 정의로운 답으로, 폭력에는 적당한 대응으로, 역경에는 인내심으로 살고 싶었던 겁니다.

페르난도 데 로하스 『라 셀레스티나』



가난하지만 즐겁게 사는 삶, 인도인들의 삶이다. 매일이 축제다. 그리고 그 축제를 대하는 인도인의 자세는 매우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어디서 잔치가 열렸다 하면 삽시간에 수십수백 명이 모여드는데, 다들 하나같이 한껏 차려입고 최고로 화려하게 꾸민 상태다. 언제 꽃을 엮고 헤나를 물들이고 옷에 비즈를 달았는지 모른다. 아침의 가난은 온데간데없고, 저녁엔 모두가 왕이고 왕비다. 너무 멋지고 아름답다. 더 매력적인 건, 그 왕과 왕비는 우아를 떨거나 새침하지 않다. 춤과 노래 앞에서 수줍어하거나 쭈뼛거리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체면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스테이지를 점령한다. 파티 피플을 보려면 이비자를 갈 게 아니라, 인도를 가야 한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밤이 되면 들썩들썩 두둠칫.


인도에 도착해 처음 한 달 동안은 일과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숨 돌릴 만하니까, 여기저기서 초대장이 날아드는 거다. 우리는 외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프리패스에 브이아이피 대접을 받았다. 7월 마지막 한 주 동안의 축제만을 적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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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일요일.

50여 개 팀이 참여하는 댄스 페스티벌. RMS function Hall에서 얼린 그 행사는 저녁에 시작해서 자정까지 이어졌다. 참가팀들의 실력은 솔직히 우리나라 비보이에 비하면 율동 수준이지만, 그 열정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한다. 난 의자에 앉아서 보다가 나중엔 동네 꼬마들과 함께 무대 앞 바닥에 주저앉아서 봤다. 그때 유행했던 모든 인도 음악을 그 날 다 들은 것 같다. 하나 같이 리드미컬하고 업템포다. 음악 만으로도 흥이라는 것이 폭발. 중독성 무엇. 절로 들썩이는 어깨와 리듬 타는 손가락 발가락은 어쩔 수 없다. 술이라도 한 잔 먹었다면 곧장 무대로 난입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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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화요일.

연희 공연. 골목 사이에 가설무대를 설치했다. 10시 반에 시작해서 새벽까지 이어진 그 공연에 동네 사람들 죄다 안 자고 모인 듯. 공연은 휘황찬란해서 눈이 빙빙 돌 지경이었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피리와 북과 종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극의 베이스를 끌고 나간다. 그러면 온몸을 화려하게 치장한 등장인물들이 무대에 등장해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데, 얼굴을 빨갛고 파랗게 칠한 것은 물론이고 번쩍거리는 의상에 장신구들까지 휘감은 그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우리나라 탈춤이나 판소리 비슷하기도 한데, 그때 전해 들은 극의 내용은 '착한 신의 무리와 나쁜 신의 무리가 싸워서 결국 착한 신의 무리가 승리한다'가 되겠다. 공연을 하다가 삘(?) 받은 관람객들은 무대로 뛰쳐나가 배우들에게 꽃 목걸이를 걸어주거나 옷에 핀으로 지폐를 꽂아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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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금요일.

우리 NGO 단체의 헤드오피스에서 점심을 지어주시는 락시미 아주머니의 아들 결혼식. 힌두교 사원에서 치러진 전통 인도식 혼례는 꽤나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서 진행되는데 그 예식과 의례에 담긴 속뜻을 다 알진 못하지만, 분명한 건 일단 기본이 '흥'이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 잔치 음식은 또 왜 그리 맛있는지.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잔치다운 잔치에 가 본 적이 있었던가. 결혼식은 많이 갔지만, 잔치라는 어감과는 약간 괴리가 있다. 잔치라 하면 동네 사람 마을 사람(평소에도 문지방 닳게 들락거리며 숟가락 젓가락 몇 개 있는지까지 죄다 까발려진 이웃 포함) 다 모여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떠들고 왁자지껄 한 판 벌이는 느낌인데, 지금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걸.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상들에게서 대물림받은 신명이라는 DNA가 있어서, 흥이라면 어디서도 빠지지 않을 텐데. 노래방, 클럽, 락페, 전국노래자랑 정도에서나 뽐낼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깝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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