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22. 2008년 2월

게인다 농장의 추억 - 만다린과 레몬

by 지예강

보웬의 토마토 농장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게인다(Gayndah)에 두 달 반 남짓 머물렀다. 게인다에 가려면 (나의 경험상) 브리즈번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일곱시간 반을 달려 번다버그에 도착, 번다버그에서 차로 두 시간 더 이동해야 한다. 사실 게인다의 생활을 떠올리면 저절로 마음이 불편해지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게 끝났기 때문이다. 그때 난 20대 초반이었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때는 옳다고 생각했었던 게, 지금 돌이켜보면 치기 어리고 서툴고 이기적이었다. 상처를 많이 받았었기에 한동안 내가 완벽한 피해자라고 여겼었는데, 아니었다. 나 역시 상대방을 아프게 한 가해자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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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인다에 도착해서 열흘 정도는 농장일을 구하지 못해 빈둥빈둥 놀았다. 떨어지는 잔고에 불안해질 때쯤에 Dave의 농장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다린과 레몬을 키우는 농장이었고, 난 여기에서 2주를 일했다. (난 게인다에서 총 세 곳의 농장에서 일했었다.) 6시에 출근해 2시에 퇴근.


하는 일은 만다린 씨닝(Thinning)과 레몬 피킹(Picking)이었다. 출근하자마자 두세 시간 정도는 만다린 씨닝을 했는데, 이건 할 만했다. 1. 만다린 나무 가까이에 사다리를 놓는다. 2. 사다리에 영차영차 오른다. 3. 가지 사이사이를 잘 살핀다. 4. 만다린 열매 중에 크기가 작거나 상처가 난 것이 보이면 따서 바닥에 버린다. 5. 계속한다. 불량 만다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끝.


새벽이슬에 만다린 나무의 가지와 잎과 열매가 모두 젖어 있는 상태라,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축축이 젖는다. 찝찝하지만, 해가 높아지면 만다린 나무와 함께 내 옷도 마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물론 마르기가 무섭게 땀범벅이 되지만. 그보다는 무거운 사다리를 요리조리 옮겨야 하는 게 더 힘들었다.


그러나 레몬 피킹에 비하면 만다린 씨닝은 준비운동에 불과하다. 레몬 피킹은 노동이 아니라 노역에 가까웠다. 우선 복장부터 갖춰야 한다. 우선 누런 캔버스 천으로 만든 커다란 백을 목에 건다. 앞치마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데, 그보다는 캥거루 주머니를 달았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우리끼리는 그걸 캥거루 백이라고 불렀다. 캥거루 백을 장착하고 레몬 나무 가지 사이에 놓아둔 사다리에 오른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레몬을 찾는다. 찾았다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작은 니퍼로 가지 끝을 잘라서 레몬을 딴다. 레몬을 캥거루 백에 담는다. 백이 가득 차면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나무 밑의 커다란 플라스틱 빈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다시 사다리에 오른다.


레몬 피킹을 시작하는 때는, 공교롭게도 태양이 그 날 주어진 자신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와 맞물린다. 가만히 있어도 뜨겁고 덥고, 좀 더 가만히 있으면 따갑고 무덥다. 그런데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면? 그곳이 불지옥이다. 게다가 캥거루 백은 기본 스펙이 크고 무겁고 착용이 불편하다. 백에 레몬을 담기 시작하면 조건반사처럼 목이며 어깨며 허리며 다리며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는 거다. 그 볼썽사나운 지경을 하고선 높은 사다리 위에 중심 잡고 서서 계속 니퍼질을 해야 하니, 내가 레몬을 따는 건지 기예를 부리는 건지. 게다가 레몬은 생각보다 예민한 친구다. 손에 힘을 주면 쉽게 검게 멍이 들기 때문에 살살 다뤄야 한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Dave 농장은 수확 끝물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일이 많지 않았고, 그즈음 날씨가 궂고 비가 많이 내려서 농장일을 아예 할 수 없는 날도 많았다.(나도 그 2주 동안 3일을 쉬었다.) 일꾼(?)들은 더 돈을 벌 수 있는 농장을 찾아 유목민처럼 떠나는 중이었다. Dave는 곧 농장 문을 닫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일할 사람들에게 능력제가 아닌 시간제로 페이를 계산해 줬다. 난 과일 농장에 적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토마토는 채소니까.)


만다린 씨닝도, 레몬 피킹도 하다 보니 익숙해졌지만, 해충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 부시맨 스프레이 없이 농장에 가는 건 무기 없이 적진에 돌진하는 거와 같아서 꼭꼭 챙겼다. 틈만 나면 살을 뜯어 피를 뽑아가는 거대 모기의 출현도 괴롭고, 먼지만 한 크기인데 쫓아낼 수도 잡아죽일 수도 없는 날벌레가 끈덕지게 달려드는 것도 괴롭다. 그리고 꿈에서도 본 적 없는 이상한 모양과 이상한 색깔의 온갖 벌레들. 하지만 끝판왕은 따로 있었으니.


캥거루 백에 채운 레몬을 비우기 위해 빈으로 향하던 때였다. 내 길목을 막고 있던 엉킨 가지를 헤치며 지나가는데, 왼쪽 팔꿈치와 왼쪽 옆구리가 동시에 불붙은 것처럼 화끈거리면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지는 거다. 아프기도 몹시 아팠지만, 그 보다 순간 눈 앞이 하얘진 게 충격적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벌들이 붕붕. 일단 캥거루 백을 벗어던진 뒤 쏘인 부위를 살펴봤다. 그새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벌에 쏘이면 응급처치를 해야 하고, 그 정도에 따라 약국이나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다행히 대수롭지 않게 끝났다. 벌에 쏘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줄곧 모기에 쏘였다. 부시맨 스프레이는 단연코 대체불가능한 농장의 필수품이었지만, 농장에 포진하고 있는 그 수많은 적들을 다 물리치기엔 실로 역부족이었다.



항구에서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 있었다. 모두가 헌 추리닝을 입고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위험하고 힘들게 일했다. 볼품없는 외모를 주눅 들게 만드는 예쁜 여자도 없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거기엔 실패를 받아들인 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 밑바닥까지 떨어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었고 나는 그 밑바닥에 있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놀랍게도 항구에선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한승태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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