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이지, 마냐나
어디선가 기타 퉁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리와 나는 함께 별을 쳐다보다가 키스했다. "마냐나." 그녀가 말했다. "내일은 모든 게 다 잘될 거야.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샐?"
"물론이지, 마냐나." 언제나 '마냐나'였다. 그다음 주 내내 내가 들은 말이라곤 '마냐나'가 전부였다. 그 사랑스러운 단어는 아마도 천국을 뜻하는 말이리라.
잭 케루악 『길 위에서』
내가 처음으로 밟은 이국의 도시는 파리였다. 다시 파리에 가야 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인데, 하나는 노트르담 대성당 때문이고, 둘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은 바람보다,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을 실제로 관람하고픈 욕심이 더 크다. 호주 시드니에서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노트북으로 보여준 1998년 프랑스 초연.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서 호주에 있는 동안에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수십수백 번은 보고 보고 또 봤을 거다. 한참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유튜브에서 클립 찾아보고, MP3를 꺼내 듣는다. 파리 팔레드 콩그레 극장(Palais des congress de Paris)에 앉아 그 공연을 볼 수만 있다면! 물론 Garou가 콰지모도 역을 한 오리지널 공연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다시 세비야에 가야 하는 이유도 두 가지다. 하나는 세비야 대성당 때문이다. 히랄다 탑에 올라 크게 숨을 들이쉰 뒤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린 정원에 앉아 한참 멍 때리고 싶은 마음. 하지만 무엇보다도 두 번째 이유가 훨씬 크다.
2014년 2월, 한 달간의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로 세비야의 따블라오인 El Arenal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본 것. 대성당 앞에 작은 테이블을 세워놓고 플라멩코를 홍보하는 여자분이 너무 친절해서, 홀리듯이 당일 7시 30분 공연을 예매했었다. 따블라오를 찾지 못해 골목 안을 헤매다가 근처 바 안에서 맥주 마시던 남자분께 길을 물었는데, 너무 반가워하며 가게 밖으로 부랴부랴 뛰쳐나와 상세히 알려주시는 거다. 자기도 어제 공연을 봤는데 너무 감동했었다며 엄지 척. 그때부터 조금 기대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무대였다. 난 중년의 부부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쭈뼛쭈뼛 합석한 뒤, 그들처럼 샹그리아 한 잔 주문해 마셨다. 조명이 어두워지자 사위가 고요해지고, 긴장 속에서 드디어 시작. 그리고... 아, 그 한 시간 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능력 밖이다. 완전히 실패할 거다. 난 그저 내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만 주절주절 읊을 수 있을 뿐.
기타를 치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머리가 벗어진 젊은 남자는 묵묵했고, 그보다 나이가 많은 뚱뚱한 남자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누가 봐도 즐기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손가락이 춤을 출 수 있나 싶게 연주하더라. 노래를 부르고 추임새를 넣고 박수와 발구르기를 하는 남자는 셋. 기타리스트와는 달리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무대 뒤로 들어갔다가 곡이 시작되면 다시 나왔는데, 둘이 나올 때도 있고 셋이 모두 나올 때도 있었다. 처음엔 조셉 고든 래빗 닮은 남자에게 (잘 생겨서) 눈길이 갔었지만, 단연코 실력이 가장 좋았던 키 작은 남자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음역이 높고 숨이 길고 기교가 많았다. 구슬프고도 애절해서 가슴이 미어졌다.
플라멩코에 압도당했다면 그건 무조건 댄서들 때문이다. 첫 곡이 시작하자 여자 두 명, 남자 두 명이 무대로 나와 매혹적인 춤을 추고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곡엔 그 네 명 중 남자 댄서 혼자 나와 무대를 이끌었는데 - 이 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작처럼 마른 몸에 예민한 얼굴. 온몸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매 동작이 클라이맥스인 것처럼 춤을 추는데,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은 거다. 하지만 절정에 치닫은 춤은 사그라들 기미도, 끝날 기미도 없이 계속 계속 이어지고 다시 다시 시작했다. 분명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황홀경에 빠졌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어진 솔로 무대. 머리에 꽃을 단 여인,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 풍만한 가슴에서 부채를 꺼낸 또 다른 여인의 댄스, 댄스, 댄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인의 노련한 춤사위가 정점을 장식했다. 그러고 나서 처음처럼 네 명이 모두 나와 피날레 무대. 댄서들은 모두 카리스마 폭발에, 포텐이 팡팡 터졌다. 하지만 댄서들만이 주목받은 공연은 아니었다. 연주, 노래, 춤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삼박자가 잘 어우러지기도 했고. 섹시하고 터프하고 해피하고 새드하고, 다 했다.
공연을 다 보고 거리로 나오니 9시. 행복한 밤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남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앞 테이블에 일본인 가족이 앉아 있었다.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6~70대로 보이는 여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그 순간 어머니가 딱 떠오르면서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옆에는 딸이나 며느리로 보이는 또 다른 여인이 앉아 그분을 챙겨주고 있었다. 보기 좋았다. 부러웠다. 그리고 죄송했다. (갑분효)
파리도, 세비야도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아마 마냐나?
그럼 효도는 언제 할 수 있을까? 마냐나? ... 제발 오이가 되어야 하는데. 오이.
(스페인어로 mañana는 내일, hoy는 오늘)
* 여행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니 <꽃보다 할배 - 스페인편>이 방영을 시작했다. 난 할배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스페인을 여행했었다.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라나다에서 같은 방을 쓰고 어쩌다 보니 비행 편이 같아서 바르셀로나까지 함께 날아간 한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포르투갈에서 촬영팀을 만난 모양이었다. 신구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길을 물어본 게 카메라에 찍혔다며 방송에 나올까 걱정을 했었는데, 본방 사수한 결과 그 친구는 편집됐다. 하지만 El Arenal의 플라멩코 공연이 나와서 얼마나 반갑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