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에게 보내는 사과문
어느 유명한 시의 한 구절처럼 그 해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농장에서 동고동락했던 사람들과 파국을 맞은 뒤 도망치듯 게인다를 떠났고, 브리즈번에 사흘 머문 뒤에 시드니로 향했다. 시드니에서 다시 시드니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회를 풀어낼 여유는 없었는데, 몸도 마음도 몹시 쪼들리고 가난했기 때문이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내 수중에는 10센트짜리 동전만 몇 개 남은 상황이었다. 그때의 난 무슨 정신머리였는진 몰라도, 농장에서 만난 (그나마 내 편이었던) 사람에게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을 빌려준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돈을 갉아서 게인다에서 시드니까지 오는 동안의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로 썼고, 마지막으로 시드니에서의 일주일치 숙박비를 선불로 지불하고 나니 거지꼴을 면치 못하게 생긴 거다. 일자리가 시급했다. 만들어둔 이력서를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다.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연락이 와도 면접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출근하라는 연락이 온 곳 중 하나는 공항 근처 면세점이었는데 사비로 검정 정장과 검정 구두를 마련해야 해서 포기. 다른 하나는 기념품 상점이었는데 하루치 날 써 본 뒤에 자격미달이었는지 바로 자르더라. (Paddy's Market의 Frank. 20달러 다섯 장을 쥐어주며 내게 무례하게 대했던 거 아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그렇게 쫓겨나면서도 그날 일당이라도 받을 수 있었던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래도 다행히 시드니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Broadway 쇼핑센터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급여는 2주 뒤에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생활을 당분간 견뎌야 했다. 그나마 빌려준 돈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어서 숨 쉴 구멍은 있었다. 난 초코바, 비스킷, 식빵, 싸구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 그즈음 시드니 날씨는 몹시 춥고 비가 자주 내린 탓에, 난 감기까지 된통 걸린 뒤 좀처럼 낫지 않고 있었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자주 맞았다. 그리고 1890년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는 너무 멋졌지만, … 추웠다. 약은 구할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가 일에 서툴러서 히스테리컬한 매니저에게 매번 지적을 받는 것도 스트레스였다.(쌍욕을 입에 달고 살고, 가끔 성희롱도 하는 미친 인간이었다.) 농장(일)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우울했다.
일한 지 3일째 되던 날, 미트파이 하나와 라떼 한 잔을 사서는 게스트하우스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그게 그날의 점심이었다. 전혀 내 위장을 배려하지 못한 음식의 양. 아쉬움에 남은 라떼를 조금씩 홀짝이고 있던 그때, 안토니오가 내 앞에 앉았다. 오며 가며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친구였고,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그떄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우리는 그 테이블에서 몇 시간이고 떠들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리셉션 안에서 또 한참 수다를 떨었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일기에도 안 써 있고.) 하지만 분명한 건 무척 재밌었다는 거다.
여유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었던 때에 안토니오는 갑자기 나타난 위로였다.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는 리셉션 앞에서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Dama라고 부르는 보드게임(체커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을 가르쳐줬던 것.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 어느 마을과 가족들 사진을 보여줬던 것. 기타와 하모니카로 이런저런 곡들을 연주해 줬던 것. 특히 자작곡은 정말! 또, 새벽에 갑자기 흰 꽃 한 송이 들고 내 방 앞에 찾아왔던 것. 한국인 룸메이트에게 몇 마디 배워와 내게 써먹었던 것. 서툰 실력으로 요리해 줬던 것. 온통 받은 기억뿐이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 언젠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한 날, 유독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데 괜히 모든 게 버겁고 탈진할 것 같은 기분인 거다. (BGM. 패닉의 '달팽이'. 난 꼭 패닉에 빠진 달팽이 같았다.) 안토니오는 내가 자주 울적한 것을 걱정했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내 몰골을 보더니 Italian Solution을 주겠다며, 일본인 룸메이트와 함께 갑자기 즉석 콘서트를 펼치는 거다. 언제 합을 맞춘 건지 기타 연주도 호흡이 척척 맞고 노래에 화음까지 넣어가면서. 그냥 모든 게 고맙고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느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여행자들이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고 그러다 보니 한바탕 왁자지껄 파티가 되었다. 당연히 이유 없는 불안과 우울은 잠시나마 사라졌고.
그가 내게 늘 했던 말이 "Don't disapear."이었다. 그런데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같이 일하던 친구와 셰어하우스를 구하면서 오래 머물던 그 게스트하우스 Glebe Village를 떠났고, 일에 익숙해지고 돈이 좀 모이자 뉴질랜드로 날아갔다. 고마운 친구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사라진 거다. 그때의 난, 지금 생각해도 각박하고 못됐었다. 친절과 호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내 기억이 맞다면 센트럴 기차역 쪽으로 가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에 길 건너에 서 있는 그를 보았고, 난 도망치듯이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때의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다. 서투르다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매혹되는 것은 '허무'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혜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