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굽혀펴기 좀 하고요
어머니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어머니를 여행 중에 만족시킨다는 것은 하나의 불가능한 도전이다.
물론 어떤 어머니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렇다.
여행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주로 TV를 보다가 가고 싶은 곳을 점찍어두곤 하시는데, 한 번 마음에 품으면 오매불망이다. 만리장성에 대한 짝사랑을 이뤄드리고 나니, 하롱베이였다. 난 2년 전쯤 그 당시 만났던 남자 친구와 함께 베트남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한 번 가본 곳인 데다 특별히 행복했던 기억도 없었기에 썩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어머니가 그리도 애태워하시니.
어머니는 타고난 성격상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분이다. 그 말인즉슨 떠나기 전에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다가 막상 현지에 다다르면 시무룩하고 시큰둥하고 뚱하고 무덤덤하다. 가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 즐거운 것도, 맛있는 것도, 재밌는 것도, 놀랄 것도 하나 없는 그런 상태. 모시고 가는 입장에서는 매우 힘 빠진다. 그래도 나서서 이거저거 해보자, 요거그거 먹어보자, 여기저기 가보자고 해도 영 탐탁지 않은 모습. 타국에서 하극상을 저질러 국제 불효녀로 낙인찍힐 수는 없으니 화를 꾹꾹 참는다. (친구였으면 싸웠겠지만.)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출발하는 하롱베이 투어를 예약했다. 아침 8시, 머무르던 호텔 앞에 픽업 버스가 왔다. 가이드는 Kim. (베트남 사람이다. 어머니에게 자기와 이름(성)이 똑같다고 반가워했다.) 투어를 함께할 여행객은 우리 포함 17명. 커플도 있고 가족도 있고 혼자도 있었다. 모녀가 온 건 우리뿐이었고, 아시아인도 우리뿐이었다.
12시 반에 하롱베이 유람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작은 배로 크루즈선(Halong Legacy Cruz) 가까이 이동해 옮겨 탔다. 배는 데크 포함 3층 규모였는데, 우리는 204호 방을 배정받았다. 큰 침대 하나와 작은 침대 하나, 화장실이 딸려 있는 꽤 멋진 방이었다. 창을 통해 바다 풍경이 방 안에 그대로 들어왔다.
크루즈는 작은 섬과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치며 바다를 가로질렀다. 어머니와 나는 데크에서 하롱베이의 풍경을 한참이나 감상했는데, 역시 어머니의 기준엔 미치진 못한 모양이었다. TV로 볼 때가 더 좋았다나. 나 개인적으로는 날이 흐린 게 아쉽긴 했다. 화창했다면 TV로 볼 때만큼 좋았을지도 모르니까.
위기는 뜻하지 않게 카약킹에서 왔다. 2인 1조가 되어 카약을 타고 노를 저어 저어어어어어어어기 보이는 작은 섬을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이게 너어어어어어어어어무 힘들었다. 어머니나 나나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루한 몸의 소유자였는데, 둘 다 그나마 등산이나 걷기를 좋아해서 다리에는 힘이 있었다. 문제는 팔. 난 버스 손잡이 잡을 때나 그나마 팔힘을 쓰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설거지조차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그런 우리 둘에게 노를 젓는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 하나의 불가능한 도전, 하나의 해선 안 되는 도전이었던 거다.
앞에서 썼듯이 아시아인은 우리뿐이고 나머지는 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밥 먹고 팔굽혀펴기만 하는 사람들 같았다. 뱁새와 황새. 거북이와 토끼. 분명 둘 다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데 왜 우리만 나아가지 않는 건지. 나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잘못 나아가는 것도 문제였다. 왜 똑바로 가지 못하고 제멋대로 우회전, 좌회전하는 건지. 저어어어어어어어기 보이는 섬은 한참 지나도 계속 저어어어어어어기 있었다.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팀들이 보이자, 더 이상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에서 그만 두자 싶어서 뱃머리를 돌려보려 했지만, 왜 지금은 똑바로 나아가기만 하니. 엉망진창이었다.
어깨와 팔이 너무 아팠고 특히 노를 쥔 손이 아팠다. 이미 피부가 까져 빨갛게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요령이 없으니 힘만 더 쓴 모양이었다. 누가 밧줄로 매달아 끌고 가줬으면 싶었다. 낙동강 오리알처럼 덩그러니 하롱베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데, 허탈한 기분. 뒤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투덜거림. 왜 이리 힘이 없냐는 타박. 네. 운동할게요. 일단 낙오 위기부터 벗어나고요. 이미 다들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Kim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재촉하는) 눈빛에 허둥지둥.
그래도 카약킹 끝나고 찾아간 승솟이라는 석회동굴을 어머니는 마음에 들어하셨다. 저녁은 스프링롤을 만들어 보는 체험 시간이었는데 이때 어머니의 (팔이 아닌) 손이 빛을 발했다. 예쁘게 잘 만들어서 다른 여행객에게 먹이기도 하고. 배 위에서의 하룻밤도 멋졌다. 침대에 누워 오랜만에 수다 실컷.
둘째 날은 이른 아침부터 비가 왔는데, 그야말로 폭우였다. 다행히 점차 잦아들었고, 그 덕에 수상가옥들이 점점이 떠 있는 고즈넉한 풍경 속을 유유자적 유람하자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더께가 벗겨지고 찌꺼기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사위는 서늘하니 조용했고, 나룻배에 고여 있던 빗물을 바가지로 황급히 퍼내시던 뱃사공도 제법 감회에 젖은 표정.
하롱베이 투어를 끝내고 며칠 더 하노이에서 묵었다.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다운 모습이었고, 난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를 도전을 어쨌든 치렀다. 그래도 다행인 건 다녀와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는, 그때의 여행을 아름답게 기억하신다는 거다. 가장 좋은 건 미래의 여행을 기대하는 것도, 과거의 여행을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것도 아닌 - 현재의 여행을 마음껏 즐기는 것인데. 그래야 나도 좀 덜 힘들고.
요즈음 어머니가 점찍어 둔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다. 팔 힘쓸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팔굽혀펴기 좀 하고요.
기억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포토샵이 사진의 노출을 보정하듯 기억은 과거에 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 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흐릿하게 혹은 그 반대로. 그제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바라보느냐, 더 나아가서 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삶은 잘 짜인 픽션이다.
김연수 『언젠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