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31. 2016년 3월

화산암과 콘도르

by 지예강

사람들은 더 이상 높은 하늘을 날거나 깊은 바닷속을 탐험하는 것에 대해 상상하지 않는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바벨탑을 쌓거나 바다를 땅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에도 무덤덤하다. 불과 몇십 년 전이었다면 사람들이 막연하게 꿈만 꾸었을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상은 일상의 연장으로서만 가치를 갖는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곤 각자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속물적인 것들뿐이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일상은 진부하지 않은 상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오영욱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땅을 파 보자. 맨손도 좋고, 호미도 좋고, 삽도 좋다. 여유와 능력이 된다면 굴착기를 이용하자. 하지만 어떤 장비를 이용한다 해도 땅을 50㎞나 팔 수는 없을 거다.

50㎞ 지하는 500~1,000℃쯤 된다고 한다. 물론 더 깊어질수록 더 뜨겁겠지. 그곳에서는 단단한 암석도 달아오르다 못해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끓어오르고 또 끓어오르다가, 가끔 제 분을 못 이겨 땅을 뚫고 솟구치기도 하는 거다. 지표면을 타고 흐르던 뻘건 바위물이 식어서 하얗게 굳어버리면 그게 바로 화산암.

그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있다. 바로 페루의 아레키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다.

모든 게 다 신비롭다. 지구 중심 가까이 저 깊은 곳에서 바위가 녹아 뜨겁게 흐르고 있다는 것도, 땅을 깨부수고 나와 창공을 향해 강렬하게 분출된다는 것도, 그토록 뜨거웠지만 그토록 차갑게 식어버린다는 것도, 완전히 덮어버림으로써 완벽하게 탈바꿈된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도. 하지만 가장 신기한 건 인간에겐 분명 재앙이었을 자연의 섭리, 그 이후의 일이다. 하얗게 굳은 돌을 땅에서 떼어내고, 짊어지고, 옮기고, 깎고, 다듬어서 광장과 대성당과 건물들을 세우다니. 그것도 이토록 아름답게.




아르마스 광장에 앉아 대성당의 하얀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그런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차례대로 빚어낸 작품이 결국 신을 향할 때의 경건함과 경외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일. 하루 모든 시간을 이 앞에서 보내며 감탄하지만, 1년 모든 계절을 이 앞에서 보낼 수 없음을 한탄하게 되는 일. 넋 놓고 구석구석 뜯어보며 감상하다 그만 해가 기울고 달이 뜨면, 낮보다 더 아름다운 밤의 풍경을 깜짝 선물처럼 받게 되는 일.

상상 속의 나는 아레키파의 광장에서 조금씩 늙어 간다. 벤치에 앉아 글을 쓰고, 가끔 고개를 들어 대성당을 바라본다. 동네 아이들에게 한두 마디 스페인어로 말을 걸기도 하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을 펼쳐 들고 원문을 읽어 보려 애써보기도 한다. 처음의 나는 완벽한 이방인이었지만, 곧 인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그들의 삶 속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 가끔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해지면 훌쩍 콘도르를 보러 가는 거다.


콘도르. 아레키파에서 네다섯 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콘도르를 볼 수 있는 콜카 캐년의 전망대에 다다른다. 콜카 캐년 1일 투어를 신청하면 새벽 세 시에 숙소 앞으로 투어버스가 픽업하러 온다. 버스를 타고 꾸벅꾸벅 졸면서 밤길을 달리면, 동이 틀 무렵에 4,000~6,000m 높이의 화산이 사방으로 둘러진 뷰포인트에 꿈결처럼 서 있게 된다. 치바이(Chivay)에서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요기를 하고 또 한참을 달려, 드디어 콜카 캐년의 품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부터는 창밖의 모든 풍경이 경이롭다.


콜카 캐년의 깊은 협곡이 만들어내는 장관.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콘도르 십자가 전망대(Mirador Cruz del Cóndor). 이 곳에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새이자 맹금류 중에서는 가장 크다는 콘도르를 볼 수 있다. (세계 1등은 앨버트로스란다.) 1.3m에 육박하는 이 거대한 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절벽 저 아래에서부터 하늘 저 높이 힘차게 솟아오른 뒤 창공을 반으로 가르며 고공비행하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나같이 고개를 들어 콘도르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사람들. 그에 부응하듯 콘도르가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선보이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탄성이 터진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자라느라 성장통을 달고 살았던 아주 오래전 그때, 매일 밤 꿈속에서 나는 저 콘도르처럼 하늘을 날곤 했다. (참새나 비둘기는 분명 아니었고, 콘도르만 한 크기였다.) 물론 콜카 캐년처럼 장대한 협곡을 날진 않았지만 내가 살고 있던 도심을 내려다보며 상승과 하강의 스릴을 즐기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요즘은 아무리 원해도 그렇게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 않는다. 대신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목적지를 잊어버려 어느 정류장에서도 내리지 못하거나,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이 화려하고 복잡한 건물 안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 꿈을 꾼다. 아니면 가족, 회사 사람들, 친구들이 등장하는 뻔한 일상이 반복돼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을 지경.


아레키파에서 화산암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대성당을 홀린 듯 바라보던 내 눈, 콜카 캐년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콘도르를 쫓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던 내 눈은 지금은 보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하루하루 삶을 꾸려 나가다 보니 꿈꾸던 것들은 시선 밖에 있고, 아름답고 진귀한 것들을 쫓아 멀리, 또 높이 보기에는 눈 앞에 닥친 일들에 급급하다. 그래도 가끔 집으로 향하는 밤길을 타박타박 걷다가 쓸쓸함 비슷한 기분이 들면,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고개를 들어 달을 찾는다. 휘영청 뜬 달은 그 기울기와는 상관없이 내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 주니까.



오백만 년 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득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을까? 나는 우주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다.

신용목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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