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딴 곳에서

30. 0000년 00월

안티패셔니스타, 후진 옷만 입어요

by 지예강

미술관은 오로지 흥미를 기반으로 한 나의 의지로 방문하지만, 박물관의 경우는 직업병과 연관이 깊다. 수년간 역사관, 문학관, 과학관, 기념관, 체험관 등 전시관 쪽 일을 했던지라 다른 나라로 여행 가서도 괜히 그곳의 유명한 박물관엔 들러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은 대체 왜?). 어떤 주제와 스토리라인으로 전시를 구성했는지, 공간은 어떻게 나누고 배치했는지, 전체 디자인 컨셉은 무엇인지, 패널/영상/디오라마/유물 수준은 어떤지, 킬러 콘텐츠는 무엇인지…. 뭐 그런 걸 일일이 따져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뒷짐 지고 쓱 한 바퀴 둘러봐야 될 것만 같은 기분.


홍콩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떠나기 전날의 오전 시간을 홍콩역사박물관을 관람하는 데에 썼다. (원래는 그 앞의 홍콩과학관도 갈 예정이었지만, 기력이 달려서 포기했었다.) 홍콩역사박물관의 개관시간은 오전 10시. 역시나 부지런 떤다고 숙소를 일찌감치 나온 탓에 침사추이의 찰리 브라운 카페에서 (뇌를 깨우고자) 달달한 초코칩 프라파 한 잔 마시며 때를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가본 여러 박물관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유익하고 재밌었다. 일단 디오라마가 너무 고퀄이라서 그것만으로도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상설전시는 지하와 2층, 두 개 층에 꾸며져 있다. 지하의 1~4관은 홍콩 지역의 지질시대부터 선사시대, 고대, 중세까지의 역사를 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끄트머리 즈음 드래곤 보트 댄스, 경극, 사자탈춤을 소개한 코너들. 2층의 5~8관은 지하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는데, 서구문물의 유입과 영국의 지배에서부터 시작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까지의 근·현대 역사를 다뤘다. 집, 상점, 골목 등 근대의 홍콩 거리를 그대로 복붙한 듯 재현해 놓아서 구석구석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영화 속 장면으로 본 홍콩의 문화'와 같은 흥미로운 영상 콘텐츠를 곳곳에 배치해 놓은 것도 센스가 있었다. 그런데 왜 방문객이 거의 없었을까? 그날 일요일이었는데.



20130825_103648.jpg
20130825_104255.jpg
20130825_102722.jpg


그런데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건 건 1층의 기획전시다. 그날 <The Splendours of Royal Costume : Qing Court Attire>라는 제목으로 청나라 황실 의복에 대해 소개하는 기획전이 진행 중이었는데, … 그냥 안 봤다. 아아, 안 본 걸 후회하고 있다. 왜냐하면 홍콩에 다녀온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두 편의 영상 때문이다.


기획전 티켓을 끊지 않아도, 로비에 상영 중이던 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하나는 대형 프로젝터 세 대로 연출한 영상으로, 고화 속 황실 사람들의 다양한 의복을 소개했다. 고화를 그대로 살려 배경은 2D로, 주요 의복을 입은 주인공은 3D로 표현했는데, 아트웍이 몹시 섬세하고 인물의 움직임이 몹시+몹시 자연스러워서 내적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금 작은 프로젝터 여섯 대로 보다 와이드 하게 연출한 영상으로, 황실 의복 제작과정을 담았다. 위트 있는 스토리를 간결한 먹선 드로잉으로만 속도감 있게 표현했는데, 재밌어서 그 자리에서 두세 번은 본 것 같다. 정말 두 편 다 잘 만들었더라.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국립과천과학관, 국립민속박물관도 훌륭하니 자주 가야지. 이제는 직업병이 아닌, 흥미를 기반으로 한 나의 의지로 방문 가능하다.



황실 의복 제작과정 영상을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담아왔는데(촬영이 가능했습니다.), 이 글을 쓴다고 다시 보니 옷 한 벌 만들어 입기가 얼마나 고단한 일이었는가 싶다. 물론 청나라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왕실도 마찬가지다. 물론 왕실까지 갈 필요도 없다. 서천에 위치한 한산모시관에는 모시옷 한 벌 짜기 위해 입술이 터지고 피가 날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골이 나다'도 모시풀을 이로 가늘게 째고 째고 또 째다가 '이'가 깨지고 파이면서 '골'이 날 지경이 된 것에서 온 말이니. 지금도 전문 미싱사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실밥과 먼지 속에서 힘들게 일하시겠지만, 사실 공장에서 찍어내면 하루에도 수백 벌씩 기성품이 만들어지니 옷 지어 입기 어려운 시절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야기.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옷 한 벌에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인도다.


* 물론 내가 머물던 남인도 작은 도시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 뉴델리나 아그라, 자이푸르, 바라나시 등 다른 지역은 모른다. 안 가봐서.


사진 835.jpg
사진 796.jpg
인도 전통복장은 역시 인도인에게 찰떡이다


한국에서도 멋없게 입고 다니지만, 여행을 가면 '패션이고 뭐고'다. 편한 걸 1순위로 친다. 그래서 여행 간다고 새 옷 사는 설렘 따위는 느껴본 적 없고, 난 그저 한국에서 이미 입을 대로 입어서 내 살갗과도 진배없는 티와 바지와 신발만을 챙긴다. 여행 중에 운동화 앞창이 들리든, 무르팍 봉제선이 뜯어지든, 라운드넥이 브이넥이 되든, 그냥 착용.


그런데 인도에서는 그게 안 된다. 여행객이라면 모르겠지만, 1년 가까이 머물러야 하는 단기 거주민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의복문화를 따를 수밖에 없는 거다. (참 아이러니한 건, 인도 전통복장을 갖추어 입는 건 현지인이든 외지인이든 대부분 여자다.) 사리(sari)는 입기도 불편하고 움직이는 건 더 불편할 것 같아서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무조건 좀 더 활동적인 추리다르(Churidar)를 선택. 그런데 옷 한 벌 해 입기가 왜 이리 번거로운지!


1. 원단을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에서 옷감을 고른다. 추리다르 용이라고 하면 상의, 하의, 두빠따(Dupatta, 일종의 스카프)용 옷감을 한 세트로 묶은 상품을 추천해 준다.

2. 재단사를 찾아간다. (추리다르가 다 똑같은 거 아니냐 싶지만, 목이나 소매 등 디테일한 디자인을 고르거나 타이트-루즈한 정도를 정할 수 있다.)

3. 치수를 잰다.

4. 집에 돌아가 기다린다.

5. 기다린다.

6. 기다린다.

7. 기다린다.

8. 이때쯤 다 됐겠지 싶어서 찾아간다. 그럼 재단사가 헤헤 웃으며 내일 오라고 할 것이다.

9. 다음 날 다시 간다. (8번이 반복될 수도 있음을 감안) 완성된 옷을 찾아온다.


그렇게 맞춤으로 제작된 나의 추리다르. 우선 상의를 입는다. 그냥 티셔츠 입듯 입으면 되는데, 힘들다. 입고 나면, 소매와 허리가 꽉 낌을 알 수 있다. 팔뚝과 배에 단 1g의 살이 더 붙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이를 기억해 놨다가 다음번에 재단사에게 품을 넉넉하게 해달라고 말해봐도, 그 요청은 기각될 것이다.(그들의 눈에는 타이트한 게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단 치수를 잴 때 줄자를 팔뚝살에 파묻힐 정도로 꽉 조인 상태에서 눈금을 읽는다.) 그에 비해 바지는 통이 크다. 허리는 끈으로 조여야 되는데, 꽉 묶지 않으면 대참사를 면할 길이 없다. 대충 리본으로 묶었다가 자칫 풀리기라도 하면, 그 즉시 허리춤이 발목까지 내려가 있을 테니.


요즘에도 가끔 잠옷 대용으로 추리다르 바지를 꺼내 입는다. (상의는 어딨는지 모르고 영원히 모를 예정이다.) 마치 안 입은 것 같은 착용감. 얇고 가볍고 시원하다. 비누칠해서 손으로 조물조물 빤 뒤에 널어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바싹 마른다. 허리를 끈으로 질끈 매야 하는 건 여전히 불편하지만, 급할 때 냉장고바지 대용으로 이만한 게 없다. (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패셔니스타는 좋은 옷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후진 옷이 없는 사람이다.


천명관+정용준 「육체소설가의 9라운드」 『악스트 창간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9. 2018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