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수에 기대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자의 최후의 고민은 리마에서 와라즈를 다녀올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고민할 가치도 없는데, 그때는 울적해서 판단이 흐려질 뻔했다. 여행의 기간이나 강도나 감흥에 상관없이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시간이 코 앞으로 닥치면 여행자는 누구나 울적해지리. 꼬질꼬질해진 배낭에는 여기저기서 주워 담은 힌트만 가득할 뿐, 정작 구하고자 했던 답은 없으니까. 아무튼 난 문제 해결 유무와는 상관없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 와라즈에서 리마로 돌아가 이틀을 더 머물렀지만, 여전히 내게 남미 여행의 끝은 Laguna 69. 당연히 그래야 했음을.
전날 파스토루리 빙하의 여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왕복 여섯 시간의 등산길에 올라야 하는 건 사실 부담이었다. 더구나 출발 시간이 새벽 6시에서 새벽 3시로 급작스럽게 바뀌면서 푹 쉬지도 못한 상태. 별도 뜨지 않은 깊은 밤, 승합차는 거친 산길을 한참이나 내달렸다. 롤러코스터에서도 잘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역시나 난 불가능했다. 좌석에 몸을 구긴 채 앉아 추위에 벌벌 떨면서, 그저 엉덩이가 뭉개지기 전에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동이 틀 무렵에 시작점에 다다랐다. 출발도 전에 낙오자가 생겼다. 남미 여행을 페루에서 막 시작한 사람에게 해발 4천 미터가 넘는 고도를 견디는 산행은 쉽지 않을 거다. 고산병을 심하게 앓아본 경험자로서, 이건 정신력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 게 최고의 방편이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그냥 누워 있어야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니요. 어쨌든 나머지 사람들은 걷기 시작했다. 초반엔 좋았다. 계곡물이 흐르는 드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이른 아침 산이 갓 뿜어낸 공기로 피부는 서늘해지고, 가시권은 저만치 멀어졌다. 사위는 고요하다. 그래, 걷자. 지금 내게 걷는 행위 말고는 중요한 것이 없다.
초원이 끝나는 곳부터는 계속 오르막이 이어졌다. 쉼 없이 오르고 또 올라야 했다. 중력의 힘을 받아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저 폭포가 부러웠다. 대신 폭포수 같은 땀만 줄줄. 산 하나를 정복하니 (69호수가 아닌) 호수와 함께 다시 얼마간 평지가 나타났지만, 거긴 온통 늪이었다. 이미 젖은 신발이 진창을 지나면서 엉망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행복한 사람이었지. 내려오는 길에 바로 그 늪에 빠질 줄은 모르고.
늪지대를 지나고 다시 산 하나를 올랐다. 먼저보다 더 힘들었다. 삼보일배도 아니고, 바위 몇 개 밟은 뒤에 그다음 바위에서는 쉬었다. 그냥 퍼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기를 여러 번. 69호수의 매력은 그거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해서, 순식간에 보상을 해준다는 것. 저 멀리 어디 틈 사이에 이 세상에 없는 색이 점 찍혀 있다. 깜짝 놀라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동안 이미 나는 홀려 있는 거다. 소실점 끝에 호수를 걸어 둔 순간부터 그 외의 것들은 다 지워졌다. 설산이 품은 저 호수는 동화가 아니라 신화 같은 풍경이다. 직접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여행 막바지의 울적한 감정은 이곳에서 슬픔으로 기화되었다. 자연이 주는 경외감과 무력감은 내가 내 건 문제도, 내가 찾은 힌트도, 정답을 외칠 어떤 순간에 대한 기대도 다 보잘것없게 만들었다. 호수 앞에 앉아 그저 낮게 가라앉은 슬픔을 응시했다. 같은 풍경도 어떤 사람에겐 환희였나 보다. 대담하게 호수 속으로 풍덩 뛰어들기도 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기도 한다. 나도 내 슬픔을 맘껏 슬퍼한다. 남미 여행의 마지막 풍경, 69호수에 기대어.
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
신용목 「저지르는 비」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