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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Jul 22. 2019

012. 일요일 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 김연수 님의 문장에 대입해 본다면, '바싹 마르는 것은 빨래의 일'이 아닌가. 하지만 어제 널어놓은 빨래는 본인의 일을 유예한 채 오늘도 건조대에 널려 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도 해서 세탁기에 한 번 더 돌려야 하나 싶지만, 날씨를 검색해 보니 소용없을 것 같다. 내일도 습도가 높고, 모레부터는 비가 내린다. 공기가 이렇게 축축하게 젖어 무겁게 가라앉아 있으니, 이것은 빨래의 잘못이 아닐 테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은 유난히 고요하다.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는 모든 어른들은 내일의 노동을 준비해야 한다. 이 시간 잠에 든 까닭도 출근, 이 시간 잠 못 드는 까닭도 출근. 잠자리에 들었으나 뜬눈인 사람들의 일은 한시바삐 잠드는 것일 텐데, 쉬이 그러지 못한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닐 테다. 출근과 퇴근 사이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유예하고 싶은 마음이 끌어온 불면의 밤. 사회생활이 산뜻하고 상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습도에 시달리다가 비에 젖는 기분이겠지. 퇴근 후엔 마르지 못한 빨래처럼 축 처져서 소박보다는 빈곤에 가까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거다. 그리고 어김없이 맞이 하는 밤과 밤과 밤들. 그래도 일요일 밤보다는 잠들기가 수월하리. 


  그 마음을 통감해서 '출근'과 '퇴근'이라는 단어 자체를 내 루틴에서 삭제해 버렸지만, 어차피 시한부 백수 인생이었다. 분노조절장애와 공감능력 상실, 팽배한 이기주의로 사람 피를 말렸던 이전 회사로부터 그간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받았다면 좀 더 늦출 수야 있었겠지만 그래 봤자 몇 년 아닌 고작 몇 개월 더일 테고, 결국 보통의 존재는 돈을 벌러 일터로 나가야 한다. 날짜가 확정되고 이제 열흘 남았다. 끝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나마 만족스러운 사실은, 초등학교 여름방학처럼 시간을 제대로 낭비했다는 것.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백수의 일이라면, 난 정말 잘했다. 


  직장인의 답이 백수가 아니고, 백수의 답 역시 직장인이 아님을 안다.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는데 난 늘 회피하고 엉뚱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이다. 백수로 지낸 두 달 동안 나 자신을 살펴보기는커녕 잊고 지냈고, 어쨌든 한 사람이 현명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지금은 그저 잠들거나 잠 못 들 걱정 없이 깊은 밤 불을 밝히는 사치를 누려 본다. 출근하게 되면 분명 이 밤이 그리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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