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데드 돈 다이, 최후의 날, 예행연습
한여름 비 내리는 아침을 좀비 영화로 시작하는 것도 제법 괜찮았다. 오늘의 개봉작,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 돈 다이>. 아트나인에서 9시 조조영화를 본답시고 서둘러 지하철에 올랐는데 마침 통근시간이라, 어쩌다 보니 내일의 예행연습이 되었다. 7월의 마지막 날은 내겐 출퇴근과 최소 아홉 시간 근무로 하루가 저당 잡히지 않는 마지막 날인 것이다. 즉, 백수 최후의 날.
<데드 돈 다이> 역시 최후의 날을 그렸다. 이미 이토록 완벽한 세계에서 작은 것들에 감사하지 못하며 살다가는 ("The world is perfect. Appreciate the details.") 우리 모두 좀비 떼로 변해 '커피', '샤도네이', '블루투스', '와이파이', '패션' 같은 말들을 웅얼거리다가 짐승(들)처럼(a wild animal. Or perhaps several wild animals) 서로를 뜯어먹을 것이며 결국은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경고("This is going to end badly.")를 괴랄하게 풀어냈다. 딴 건 모르겠고, 아담 드라이브가 그 역할에 참 잘 어울린다. 최후의 날을 맞이하는 가장 이상하고 이상적인 태도. 어벙한 표정과 얄미운 말본새를 장착한 뒤, 침착하게 인간의 희망도 박살 내고 좀비의 머리도 박살 내며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
나 역시 그러기로 했다. 갑자기 우주선이 나타나 이 세계로부터 날 구출해주진 않을 테고 별 수 없이 난 노동자의 단어를 웅얼거리는 좀비가 될지니, 희망에 휘둘리지 않되 절망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잘 안 되면 오늘 본 영화의 몇 장면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낄낄거리자. 그것도 안 되면 애써 무시해 온 통장잔고를 떠올리며 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