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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Nov 03. 2019

027. 추위, 육체노동

  추위가 찾아오면서 시간을 견디는 주체가 정신이 아닌 육체가 되었다. '불편한 구두의 법칙'이라고 내 멋대로 기억하고 있는 법칙이 있다. 정신 사납고 머리가 복잡한 날에 불편한 구두를 신고 외출하면 온 신경이 아픈 발에 쏠려서 날 힘들게 했던 다른 것들은 결국 별 거 아닌 게 된다는 그런 법칙. 그러나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그런 법칙은 없네.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겨울을 좋아하는가, 겨울을 싫어하는가. 겨울에 태어나서 겨울이 특별하다는 사람도 봤고, 겨울에 태어나서 겨울이 진저리 난다는 사람도 봤다. 나의 경우는 겨울에 태어나서 겨울을 몹시 힘들어하는 쪽인데, 이 계절은 희로애락 모든 감정을 그 끝에서 서러움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1년의 반은 겨울인 것만 같은 요즘인데, 서러워하기에 6개월은 너무하다.


  어쨌든 추위는 내 모든 관심을 육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밤엔 몸을 한껏 웅크려 두꺼운 이불속이 충분히 덮혀지기만을 기다렸고, 아침엔 썰렁한 공기와 밀당을 백 번쯤 한 뒤에야 이불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잠들기 직전과 깨어난 직후 날 괴롭히던 괴물의 자리를 어느새 추위가 채간 거다. 얄궂게도.


  일 때문에 2박 3일 동안 파주에 있었다. 물론 파주는 더 추웠고, 예외 없이 스튜디오 안은 밖보다 더 추웠으며, 낯선 환경과 사람들로 인해 추위의 정도는 더 깊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이어진, 하루 열두 시간을 훨씬 웃도는 근무환경은 100%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졌는데, 다음날 고단한 어깨와 허리와 다리를 쉬이느라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났더니- 아, 정신이 해장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응어리진 무언가가 휘휘 풀려 사라진, 모처럼 가볍고 빈 느낌.


  그리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마주한, 오랜만에 적어두고 싶다 느낀 문장.


  우리는 '고독이 밀려왔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고독은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고독하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텅 빈(사실은 고독으로 가득 찬) 푸른 방에 제아무리 살림살이를 들여놔도 그 방의 빈틈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으리라. 사랑에는 증오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고독에는 그 정도로 명확한 반대말이 없다. 공기처럼 늘 확실히 존재하는 어떤 것에는 반대말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일까.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저 문장 속의 '고독'을 '고통'으로 바꾸어도 좋으리라. 갑자기 떠오른 또 다른 문장.


  어린 시절은 온통 비참함이나 공포, 그리고 비참함이나 공포의 부재뿐이었고, 그가 필요했고 바랐던 건 그저 후자의 상태뿐이었다.


한야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메모를 보니 2016년 12월, 겨울이다. 주인공의 자해 장면 묘사가 너무 강렬하고 충격적이어서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가능하다면 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책)이지만, 저 문장은 지난 3년 동안 종종 떠오르곤 했었다. 저 문장 속의 '비참함이나 공포'를 '고통'으로 바꾸어도 좋으리라.


  고통스럽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밀려와 오래 머물길, 고통이 부재한 상태가 오래 이어지길. 조금 서럽더라도 괜찮으니, 추위와 겨울이 그리 만들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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