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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Nov 08. 2019

028. 그렇지만, 그러나

  오랜만에 찾은 탄천에 억새가 흐드러졌다. 비슷비슷한 녀석들을 그냥 갈대로 퉁쳐서 불렀던 건, 내 무지와 무관심 탓이리라. 


  고모의 어머니였으나 아버지의 어머니는 아니었던 그는 매번 나를 내 것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 받침이 없는 내 이름에는 항상 '-야'라는 호격조사가 붙는데, 그가 부를 때는 '-아'가 되었고 그건 매우 낯설고 성긴 느낌이었다. 친척 누군가가 바로 잡아줘도, 그가 날 부르는 이름과 방식은 항상 고집스러웠다. 그때마다 내쪽에서 부러 고쳐드리진 않았다. 상관없었다. 나 역시 그를 '할머니'든 뭐든 먼저 부른 적이 없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부를 일도 없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왜 그는 30년 넘게 날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까. 그건 내가 억새든 갈대든 상관없는, 무지와 무관심 탓이었을까. 


  네이버에 억새와 갈대를 검색해 봤다. 갈대는 물가와 같이 습한 곳에, 억새는 산이나 비탈 같이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물가에 자라는 물억새도 있다.) 갈대는 갈색, 억새는 은색이다. 갈대는 사람 키보다 훨씬 웃돌고, 억새는 사람 키만큼 자란다, 등등. 이런저런 정보를 종합해본 결과 탄천을 하얗게 수놓은 것은 억새다. 


  억새는 물론, 단풍과 은행이 한창이어서 밖은 온통 가을이다. 집에서 산책하듯 30분쯤 걸으면 네이버 그린팩토리에 다다르는데, 오늘 오후 4시에 이곳에서 <작가의 본심>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김연수 작가님의 강연이 있었다. 제목은 '잘 못 살아도 괜찮아, 다시 살면 되니까'



  기억나는 대로 거칠게 옮겨 써보면: 좌절과 방황의 시절 글을 쓰게 된 까닭은 그 어떤 첨언 없이 내 말을 들어줄 한 사람의 귀가 필요했기 때문. 그러나 들어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은 그 말들을 글로 치환해 노트에 끄적였다. 세계의 끝, 분노로 가득 찬. 처음에는 '죽고 싶다' 류의 문장들을 주워섬기다가, 나중에는 쓴 글들에 밑줄을 긋고 '정확한지'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을 사실로 고치는 연습, 생각을 쓰기보다 감각을 쓰는 연습을 하니 문장들은 변화했다. '시'가 되었다. 삶도 마찬가지. 나를 좌절하고 방황하게 했던 건 믿어왔던 세계가 붕괴되었기 때문. 그러나 그 믿음이 '정확한가'. 나의 오늘을 좌절케 한 것들은 사실 결과가 아니라 내일의 원인이며 그 판단은 지금 할 수 없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오래 산 사람의 평온은 삶 전체를 통해 경험한 '인과관계' 때문. 그걸 알게 된다면 '죽고 싶다' 류의 문장 뒤에 '그렇지만', '그러나'로 시작되는 새로운 문장을 이어 쓸 수 있다. 문학적 글쓰기. 작가는 그것을 미리 아는 사람. 예시로 든 것 중에 기억 남는 건 백석의 시(일부).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무언가 어긋나 버려 '다 끝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분노와 우울과 허무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냥 내버려 두기. 소용돌이의 반대 방향으로 휘저어 봤자, 혼탁한 것이 가라앉는 건 아니므로. 


 

  스스로를 방치했다고 여겼던 시간이, 혼탁한 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내버려 둔 시간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여름 내 안을 마구 휘젓던 그 기세가 계절을 건너오며 한풀 꺾였음을 느낀다이쯤에서 '그렇지만', '그러나'로 시작되는 새로운 문장을 기대해봐도 될까. 조금씩 나아진다 하더라도, 또 완전히 나아졌다 하더라도 '그때 그거 별거 아니었어', '지나 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이야', '다 그렇게 살아'라고 말하지는 말자. 나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센 척하지 말자. 꼰대가 되지 말자. 아닌 게 아닌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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