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천변을 걸었다. 수면 위로 물안개가 부옇게 피어오르는 모습, 달빛에 부딪힌 억새 잎들이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모습. 아무도 없는 고요한 탄천에서 그 광경은 오롯이 나만의 것. 하늘은 새까맣고 달은 새하얗고 바람은 시린데, 누가 성냥불을 그어 놓은 듯 가슴 한편이 따뜻했다. 아마 내 귀를 가득 채운 음악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RM의 'Moonchild'. 가사 전체가 그냥 시다.
We're born to be sad, sad, sad, sad suffer to be glad, glad, glad, glad.
It's okay to shed the tears but don't you tear yourself.
Moonchild don't cry when moon rise it's your time.
사실은 우린 이런 운명이란 걸, 끝없는 고통 속에 웃는 거란 걸.
오존의 'down', 마이큐의 'tired'.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나의 위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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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난 15년 간의 역사는 내가 마시고 취한 역사와도 같았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그 날 의사 선생님이 내게 내린 처방은 술을 끊으라는 거였다. 사실 병원 문에 들어서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난 만취 상태였다. 몇 시간 못 자고 깨어나 후회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그즈음에 찾아온 후회의 정도는 그 깊이가 다르긴 했었다. 술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그만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기폭제가 되었다.
술을 입에 대지 않은지 두 달이 넘었다. 아직 끊었다고 하기엔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었다. 술에게서 위로를 찾고자 했지만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들을 증폭시킨 결과만 낳았던 것 같다. 그래도 지난 두 달간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내 속의 것들을 많이 잠재울 수 있었다. 술 말고도 방법은 많다. 저 음악들처럼. 세밑의 새벽. 곧 다가올 아침과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며 '행복하자'고 다짐하진 못 하겠다. 행복은 짐작에 불과하고 그나마 불행이 무언지는 아는데, 어쨌든 불행한 순간들은 어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라서. 그래도 It's okay to shed the tears but don't you tear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