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 내렸는데 자꾸 망설이게 돼요.”
“확신하지 못하는 제가 나약하게 느껴져요.”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할 계획이다. 몇 주에 걸친 심리상담 시간 동안 직장 생활에 대해 나누었고, 현재 회사가 커리어에 크게 도움도 안 되고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뒤였다. 지난 상담 이후로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퇴사를 통보하기 어렵다 했다.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려운 건 아니었고, 결정이 정말 맞는 건가 하는 마음이 자꾸 뒤에서 붙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이게 옳은 건지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고, 조심하는 게 나쁜 일도 아니고 그럴수록 더 신중한 결정을 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꾸만 조심하게 되는 스스로가 약하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싶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선생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해요?”
“저도 비슷해요. 따져봤을 땐 A가 장점의 총량이 더 많으니 A를 선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고민하게 되는 건 B에도 장점이 있기 때문인 거죠. 그런데 그 장점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으니, 혹시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지 않을까 자꾸 B를 돌아보게 돼요.”
그녀는 내 얘기를 듣더니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혼자 결정하잖아요. 빨리 결정할 거고요.”
“저도 오래오래 망설일 때가 많아요. 이전에 일했던 곳을 그만둘 때도 그랬고요. 저도 어떤 선택을 하기 어렵다면 상담을 받기도 해요.”
그제야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회사에 퇴사통보를 했고, 인수인계를 하는 중이라 전해왔다.
얼마 전부터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임상심리학자인 스티븐 헤이즈에 의해 창시되었고, 많은 연구들을 통해 치료 효과가 검증된 이론이다. 수용전념치료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본연의 고통이 있다고 말한다. 즉, 나만 그런 고통을 겪는 게 아니라 너도, 그들도, 우리 모두 고통을 겪는다. 살다보면 누군가를 상실하는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목표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좌절한다. 기대했던 대상에 대해 실망하기도 한다. 슬픔, 수치심, 불안, 분노, 우울 등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고통은 없앨 수 없다. 줄이고 싶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발표를 앞두고 그만 긴장해야지라고 생각할수록 더욱 긴장이 되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라고 할수록 더욱 많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알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긴장하는 걸 보니 내가 이 발표를 잘 하고 싶은 거구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이별을 했으니 이렇게 슬픈 거구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히 겁나는 일이겠구나.’
왜냐하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누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다칠 때가 있으니까. 이렇게 내 고통을 충분히 수용할 때, 역설적으로 그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긴장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보다, 긴장한 내 자신을 수용하고 심호흡을 하는 편이 긴장완화에는 더 도움이 된다. 누구나 고통을 겪는다.
* 위 상담 사례 내용은 내담자 비밀 보호를 위해 각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