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쌤 Dec 07. 2022

똥기저귀와 설거지 앞에서 어른이 되다.

항암 치료하러 가는 길.

두 번째 입원하러 병원에 가는 버스 안.

미니 항암치료 같은 이 방사성 치료는 약을 먹는 거 이외 별다른 처치가 없으나 타인들과의 철저한 분리를 해야 해서 입원을 하는 듯하다. 그래서 오고 가는 길도 모두 혼자 하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입원보다 두 번째라 마음이 모든 준비가 좀 나았는데, 막내아들이 하필 배탈이 났다. 학교에 못 보내고 병원에 다녀왔다. 약을 챙겨놓고, 설사를 해서  더럽힌 아들의 팬티를 빨아 널어놓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당부하고 돌아 나오는 그 발걸음이 좀 무겁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려보면, 우습게도 쌓인 설거지와 아가의 똥기저귀 앞에서였던거 같다. 책임져야 할 생명이 생겼고, 나보다 우선되어야 할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귀찮고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쌓인 설거지와 냄새나고 더러워도 아가의 똥기저귀를 갈고, 똥 묻은 아가의 엉덩이를 뽀송하게 닦아주아야 하는 그 순간들에 나는 어른이라고 느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아프면 엄마가 달려와 나를 돌봐주셨다. 녹초가 되어 퇴근한 저녁에 나를 기다리는 설거지 같은 건 없었고, 평생 남의 똥을 볼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된 나는, 항암치료를 하러 혼자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도 당연히 모두가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아프거나 힘든 치료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그런데 어른이지만 이 길이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다. 여전히 주사는 무섭고, 외로움도 두렵다. 하지만 또 견디고 이겨내겠지. 어른은 그런 거니까.


병실에 가지고 들어간 것은 모두 버리고 나와야 한다. 속옷까지. 그래서 핸드폰도, 책도 안 된다. 그냥 2박 3일 세상과 단절. 끄적일 연필 하나 종이 하나는 챙겨본다. 그것도 다 버리고 나와야겠지만.


바람이 차지만 햇살이 참 좋다.

세상아 잠시 안녕. 더 건강해져서 내일모레 만나자.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하고도 평범한 쌍둥이 육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