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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Dec 15. 2022

사십 대 '엄마'들의 우정

세상 어려운 '엄마'들의 관계를 우리는 무려..

항암 방사성 치료 후 2차 전신스캔을 하러 병원에 다녀왔다. 항암치료는 뭐 .. 괜찮았다. 어지럽다거나 토한다거나 그런 거 없이 잘 쉬다 퇴원했다. 양쪽 입 옆에 보기 싫게 생기는 헤르페스가 생긴 정도. 이런 게 잘 생기지 않았어서 이름도 생소하고 그냥 며칠 지나면 없어지려니 했다. 그런데 점점 심해진다. 안면 한쪽이 다 아프다. 약국에 가서 이야기하니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며 연고와 면역력에 좋다는 약을 셨다.


새로 시작할 논술 프로그램  안내장을 전 날까지 다 완성해놓고, 병원 진료 후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기존에 했던 학생 어머님들께만 발송했다. 천천히 연락 주시겠지 했는데, 하루 안에 80프로가 넘는 어머님들이 연락을 주셨다. 4개월을 쉬었고, 모든 게 새로 시작하는 건데,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더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이 이렇게 잠시 쉬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덕분에 컴퓨터는 잠시 놓고 이리 소파에 누워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나에게 휴식이고 힐링이니까. 방사성 치료 후 며칠을 컴퓨터 앞에서 살았다. 곧 눈이 쏟아질듯 한  겨울, 오늘 오전 시간은 이리 따뜻한 담요하나 덮고 누워 뒹굴뒹굴 쉬며 지낼 참이다.  쌓여있는 책 박스가 자꾸 나를 잡아끌지만..






병원 진료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식이 조절할 때 내가 젤 먹고 싶다던 떡볶이, 언니가 해줄 테니 언니 집으로 오라고.


나에게는 친언니(는 없지만) 보다 더 친언니 같은 언니들이 셋 있다. 놀랍게도 우리의 인연은 애 친구 엄마로였다. 모두 08년, 09년생 큰 딸들이다. 그 중 셋은 난임의 경험이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중 나만 둘째에( 나는 둘째, 셋째 동시 에지만) 성공했다. 그래서 외동딸 엄마 둘, 딸 둘 엄마 하나, 그리고 유일한 아들 엄마이자 셋 엄마이자 쌍둥이 엄마인 나, 그렇다.


아이 친구 엄마들의 관계라는 건, 정말 그 어떤 관계보다 어려운 관계다. 엄마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려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전업맘들 사이에 직장맘이 끼어들기도 쉽지 않으며, 사는 수준 또한 얼추 비슷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끼리의 성향도 또 얼추 맞아야 하며, 학습 능력등도 비슷하면 더 좋다. 물론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 이상이 되면 그간의 직, 간접적으로 몇 차례 관계가 파탄 나고 상처를 받은 경험 등으로 더 이상 이런 관계를 깊게 맺지 않으려 하는 엄마들이 늘어난다. 코로나로 이 현상은 더 심해진 듯하다. 그래서 우리의 대략 12년쯤의 우정이 놀랍다고 표현한 거다.



다른 엄마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모두 고학년 이상이 된 나는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나서, 아이들끼리 친밀도가 높지 않아도 나와 결이 맞고 대화가 통화하면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아이 이야기 말고 주로 '나'와 '너'의 이야기를 한다. 아이 엄마들끼리 내 아이에게 해가 될까 서로 밑바닥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런 관계를 잘 유지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래도 될만한, 마음이 통하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과만 그런 관계를 맺어간다. 의 지금의 관계들은 대부분 그렇게 이어져간다.




그럼에도 우리의 우정의 유지되는 건 넷 모두 엄청 성격이 특별히 좋아서도, 쭉 가까이 살아서도 아니다.

한 명은 외국 살중이다. 오히려 네 아이가 모두 겹치는 학교, 학년에 없기에 우리는 아이들 일로 마음 상할 일도 없고 그냥 우리로 만난다. 사십 대 네 여자의 주변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세상이 보일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춘기 딸들에게 직접은 못 질러도 우리끼리 카톡방에 주는 대로 먹지 않는 딸년, 에어 팟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딸년, 거짓말하고 놀러 갔다 걸린 딸년, 맨날 물건을 질질 흘리고 잃어버리는 딸년들을 욕한다. 그렇게 지 집처럼 드나들며 친하게 지내던 이모들을 만나도 이제는 대면 대면한 사춘기 소녀들이 된 그 딸년들.


아직 이혼한 사람은 없으나, 언제 이혼할지 모를 징글징글 안 맞는 남편들 욕, 시댁 욕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쌍둥이를 죽을 둥 살 둥 키워내고 있을 때, 기꺼이 쌍둥이 하나 어깨에 함께 매고 키즈카페도 함께 가주던 언니,

살림의 ㅅ도 모르던 나에게 주꾸미 손질도 가르쳐주고, 고추장찌개도 알려주고, 맛있는 거 하면 쪼르르 와서 주고 가던 언니,

이리 내가 치료하고 나서 먹고 싶다던 떡볶이를 만들어 불러 먹여주는 언니,

늘 제일 서툴고, 제일 어린 나는 뭘 해줘야 할지도 잘 모르는데, 그런 모지란 나를 그대로 봐주고 셋 키우며 애쓰며 산다고 살뜰히 챙겨주는 언니들이다.



마음의 소리를 담아두지 못하는 우리의 센 언니가 어떤 모임에서 다들 눈치만 보고 있길래 언니가 총대 매고 한 마디 했다가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속상해했다.


"상처받았겠는데? ㅎㅎ"

"그런 소리는 우리한테나 해요. 아무데서나 하지 말고."

"사과했으면 됐지 안 받아주는 걔가 이상하다."


서로 직언도 막 날리고, 남편들에게 받지 못하는 공감도  여기서 받는다. 이제 성인까지 몇 년 안 남은 요 딸년들을 다 키워놓고 나면 언니 한 명이 시골가 텃밭 하고 살고, 우리는 맨날 놀러 가서 자고 올 거라며, 미래를 꿈꾼다. 따로 또 같이, 멀리 있어도 마음만은 같이, 그렇게 우리는 퍽퍽한 삶 속에 서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아이폰으로 바꾸고 맨날 오타내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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